구찌·버버리 등 아바타용 제품 출시 잇따라
디지털 친숙한 '미래 주소비층' Z세대 공략
2,500달러짜리 버버리 핸드백이 단돈 10달러도 안 되는 돈에 팔리는 곳. 오픈런(매장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 줄 서기 탓에 구경할 엄두도 낼 수 없던 초고가 명품 매장을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세계.
명품 접근성이 극도로 높아진 세상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메타버스(metaverse)에서 열리고 있다.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부상 이후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 자체는 과거만큼 높진 않지만, 콧대 높은 고가 전략으로 전 세계 명품시장을 호령해 온 럭셔리 브랜드의 메타버스 공략 시도만큼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패션 브랜드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①이용자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가상으로 제품을 착용해 볼 수 있도록 하거나 ②아바타용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구름·물로 만든 버버리 한정판 가방
메타버스 마케팅에 가장 적극적인 브랜드는 이탈리아 패션회사 구찌(Gucci)다. 구찌는 지난해 5월 세계 최대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Roblox)에 가상 매장과 정원, 카페 등으로 구성된 '구찌타운'을 열었다. 가상세계 속에서 사실상 영구적인 부동산을 취득한 건 구찌가 처음이다. 로블록스 이용자들은 아바타를 통해 구찌타운에 입장할 수 있고 제품을 둘러보며 입어볼 수도 있다.
구찌는 2021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만 착용할 수 있는 가방도 출시했다. 가격은 로블록스 가상화폐 가치로 5달러(약 6,500원)였으나, 이후 희소성이 커지면서 재판매 가격이 4,115달러까지 치솟아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만져보거나 들어볼 수도 없는 제품에 500만 원 넘는 돈을 기꺼이 지불했다는 얘기다.
고유의 체크무늬로 잘 알려진 영국 브랜드 버버리도 작년 7월 로블록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한정판 가방을 출시했다. 구름이나 물, 야생 나뭇잎 등 실제 세계에선 패션 소재로 쓸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한 게 특징이다. 실제 세계에서 같은 모델명을 가진 제품은 1,500파운드(약 235만 원)에 판매되고 있으나, 메타버스에선 8.99파운드(약 1만4,000원)에 팔렸다. 또 지난해 11월엔 비디오 게임 마인크래프트와 협업해 게임 속 플레이어가 무료로 내려받아 착용할 수 있는 의류 제품을 내놓았고, 실제 시장엔 마인크래프트 캐릭터 등을 새긴 스카프 등을 출시하기도 했다.
두 브랜드 외에도 발렌시아가, 프라다, 톰브라운 등이 1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는 메타버스 아바타용 제품을 내놨다. 지난해 기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절반 이상이 메타버스나 대체불가토큰(NFT)을 실험하고 있거나 곧 출시할 예정인 것으로 컨설팅업체 베인은 분석했다.
미국 Z세대 4분의 3 "아바타 위한 옷 살 것"
비싼 가격 탓에 접근성이 떨어졌던 명품 브랜드들이 이처럼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정반대의 '저가 전략'을 펴는 건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Z세대는 메타버스와 디지털 아바타에 친숙하다. 실제로 로블록스가 지난해 미국 Z세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명 중 3명꼴로 "디지털 패션에 기꺼이 돈을 쓸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또 당장 큰돈을 쓸 여력은 안 되지만 향후 명품 주소비층으로 부상할 세대다. 지금 5달러만 내고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면, 나중에 구매력이 생겼을 때 수천 달러 실제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가상 매장에 내놓는 제품은 디자인이나 출시 비용 외에는 생산·유통에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업체 입장에선 가상 매장에 제품을 미리 출시해 보고, 이용자 반응이 좋으면 이를 실물 시장에 그대로 출시하는 식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JP모건은 2030년이면 메타버스나 NFT를 통한 거래 비중이 전체 사치품 시장 매출의 1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패션업계 일각에선 "메타버스에서 저렴하게 보급되는 상품이 명품 전체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며, 명품 브랜드들의 가상세계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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