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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찐빵이 수상하다"... 중국 배달기사의 '촉', 113명 마약 조직 소탕

입력
2023.02.26 16: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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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 2개 30㎞ 배달' 요청에 이상 직감
경찰에 즉시 신고... 찐빵서 헤로인 발견

중국 상하이 창닝구의 도로에서 메이퇀 소속 배달기사가 식료품을 담은 봉투를 오토바이에 매단 채 도로 위를 달려가고 있다. 상하이=연합뉴스

중국 상하이 창닝구의 도로에서 메이퇀 소속 배달기사가 식료품을 담은 봉투를 오토바이에 매단 채 도로 위를 달려가고 있다. 상하이=연합뉴스


음식 배달기사의 비범한 눈썰미 덕분에 중국에서 마약 범죄에 가담한 110여 명이 경찰에 무더기 체포됐다.

현지 매체 중화망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산시성 경찰은 지난 12일 '산시성 마약 유통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1년 수사가 시작된 이 사건에서 경찰은 총 113명의 마약 관련 범죄 혐의자를 체포했으며, 이들로부터 395g의 헤로인을 압수했다.

마약 범죄에 특히나 민감한 중국이지만, 이 정도로 많은 혐의자를 잡아들인 건 이례적이다. 당초 산시성 내 마약 거래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시작했으나, 산시성 이외 지방으로도 마약 유통망이 확대된 것으로 확인되며 쓰촨성과 윈난성 등에서 100명 이상의 마약 범죄 혐의자를 잡아들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마약 범죄 조직 소탕 작전의 단초를 제공한 이는 평범한 배달기사였던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끈다. 주로 식당에 주문된 음식을 손님 집으로 배달하고 있는 오토바이 배달기사 우모씨는 2021년 7월 "찐빵 2개를 셴양시에서 시안시로 배달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음식을 받아 든 우씨는 평범한 찐빵이 아님을 직감했다. 말랑말랑해야 할 찐빵이 '무언가'로 딴딴하게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셴양에서 30㎞ 떨어진 시안으로 겨우 찐빵 2개를 배달해 달라는 주문 자체도 미심쩍었고, 무엇보다 배달지가 가정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도로변'이라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보통 찐빵이 아닐 것으로 판단한 우씨는 '짭짤한 장거리 배달비' 대신 '공익'을 택했다. 시안이 아닌 인근 경찰서로 직행한 그는 "아무래도 이 찐빵이 수상하다"고 신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과 함께 쪼갠 찐빵 안에선 작은 비닐봉지에 담긴 헤로인이 발견됐다.

경찰은 즉시 배달 주문 내역을 확인해 자오모씨와 류모씨를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자오씨를 심문해 공급책 딩모씨를 잡는 데 성공했고, 다시 딩씨를 추궁하며 1년 가까이 수사한 결과 쓰촨성과 윈난성까지 퍼져 있는 점조직을 모두 잡아들일 수 있었다. 100여 명이 촘촘히 연결돼 있던 대규모 마약 공급망이 찐빵 하나도 가볍게 보지 않은 한 배달기사의 '촉'에 와르르 무너진 셈이다.

중국의 마약 밀매·밀수입 수법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2020년 중국 남부의 광시좡족자치구에선 슬리퍼 밑창을 뚫은 공간에 마약을 넣어 운반하려던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2021년엔 마약을 녹여 만든 양초가 홍콩 세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셴양 경찰은 이번 찐빵 마약 사건의 숨은 조력자가 배달기사였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마약 거래로 의심되는 작은 정황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당부 차원이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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