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크라이슬러는 브랜드 출범 이후 다채로운 차량을 선보였고, 여러 경쟁 구도를 통해 ‘시장의 발전’과 함께 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면 ‘풀사이즈 세단’으로 제작된 뉴요커가 있다. 임페리얼과 함께 브랜드를 지켰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크라이슬러의 노력’이 담기기도 했다.
긴 역사, 그리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이어진 ‘뉴요커’는 과연 어떤 역사와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1938~1942 / 임페리얼의 에디션 모델로 시작한 초대 뉴요커
크라이슬러 역사 상 최초의 뉴요커는 193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대 크라이슬러는 ‘임페리얼(Imperial)’로 명명된 플래그십 세단을 갖고 있었고, 이를 조금 더 합리적이고 부담 없이 구성한 것이 바로 ‘뉴욕 스페셜 시리즈(New York Special Series)’였다.
세단과 쿠페, 그리고 컨버터블 모델로 제공되었고 직렬 8기통 엔진이 적용됐다. 거대한 체격, 그리고 넉넉한 공간과 더불어 성능의 매력을 제시하면서도 ‘임페리얼’보다 저렴했던 만큼 시장에서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1939년, 크라이슬러는 ‘뉴요커’를 독자 모델로 구성, 시장에 선보였다. 뉴요커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우수한 실적을 올렸다.
1946~1948 / 세련된 럭셔리 세단, 2세대 뉴요커
전쟁이 끝나고 등장한 뉴요커는 임페리얼 크라운과 함께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이끄는 차량이 되었다. 여전히 거대한 체격과 넉넉한 공간을 제시했고, 보닛 아래에는 직렬 8기통 5.3L 엔진이 적용되어 성능의 매력을 제시했다.
뉴요커는 캐딜락 시리즈 61, 뷰익 로드마스터, 패커드 슈퍼 클리퍼 등 당대의 ‘고급 차량’의 경쟁 구도를 구축했고 세단과 쿠페, 컨버터블 등 다채로운 외형으로 제공되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덧붙여 닷지와 플리머스 브랜드로도 판매되었다.
1949~1954 / 다채로운 스타일로 이목을 끈 3세대 뉴요커
1949년 등장한 새로운 뉴요커는 앞선 뉴요커들의 존재감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K.T 켈러(Kaufman Thuma Keller)의 지휘 아래 구현된 세단, 쿠페, 컨버터블 및 왜건 등 다채로운 차체 구성을 제시했고, 더욱 입체적인 프론트 엔드와 큼직한 체격으로 도로 위에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더불어 전쟁을 겪으며 ‘향상된 제조 기술’ 그리고 기계 공학을 바탕으로 한층 강력한 심장을 품었다. 실제 스핏파이어 엔진과 파이어파워 엔진이 적용되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이유로 ‘핫로드’ 튜닝의 기반이 되었다.
뉴요커는 같은 세대 내에서도 시기에 따라 차량의 체격, 휠베이스 등이 소소하게 변하며 시장의 평가 및 요구에 대응했다.
짧은 교체 주기를 거쳤던 4~6세대 뉴요커
1950년 중반에 접어들자 크라이슬러는 뉴요커의 수명을 대폭 줄였다.
실제 1955년에 등장했던 뉴요커는 1956년을 끝으로 시장에서 모습을 감췄고, 곧바로 1957년 새로운 뉴요커가 등장했다. 더불어 1960년에도 새로운 뉴요커가 등장했다.
당대의 뉴요커들은 빠른 교체 주기를 통해 외형적인 차이로 시선을 끌었고 점점 치열해지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해 새로운 엔진과 변속기를 선보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헤미(Hemi)’ 엔진이 등장했고, 변속기 부분에서도 ‘토크플라이트’ 변속기가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시선을 끄는 차량은 1957년부터 1959년까지 판매되었던 뉴요커(5세대 사양)인데 당대의 디자인기조에 맞춰 테일핀 디자인이 적용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1957년 사양과 1958년의 사양, 그리고 1959년의 사양 모두가 다른 스타일의 프론트 그릴과 바디킷을 적용해 ‘닮았지만 다른’ 차량으로 인식되었다. 더불어 크루즈 컨트롤 및 다채로운 기능이 더해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였다.
다만 해당 시절에는 ‘녹’이 문제되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있었다.
1960년에 등장한 6세대 뉴요커는 이전의 뉴요커들과 또 다른 스타일을 제시했다. 테일 핀을 적용했지만 프론트 그릴과 헤드라이트의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고, 곡선이 강조된 모습으로 시선을 끌었다.
더불어 5세대와 같이 연식에 따라 프론트 그릴을 다르게 구성됐다. 여기에 쿠페와 컨버터블, 세단은 물론 왜건 등 다채로운 차체 구성을 제공했다.
보닛 아래에는 V8 6.8L의 거대한 엔진을 배치해 성능을 갈구하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6세대 뉴요커는 이후 7세대에 적용될 디자인을 반영한 차량이 출시되었고, 차량 보증 프로그램의 강화로 시장에서의 좋은 실적을 올렸다.
1965~1968 / 직선적인 스타일의 시작, 7세대 뉴요커
1965년 등장한 7세대 뉴요커는 이전의 뉴요커들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제시했다. C-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체는 직선이 중심이 되는 스타일로 당대의 ‘디자인 기조’를 고스란히 반영했고, 화려한 크롬 가니시로 고급스러운 감성을 강조했다.
세단과 하드 톱 쿠페로 구성된 뉴요커는 형제 모델인 임페리얼, 타운 앤 컨트리, 300 등과 함께 시장에서의 ‘브랜드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1965년에는 크라이슬러의 판매 중 25% 가량을 담당하며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만큼 크라이슬러는 꾸준한 스타일 개선 및 상품성 개선을 이뤄냈다. 파워트레인에서도 6.8L 엔진에 뒤를 이어 7.2L 엔진을 개발, 투입해 성능의 우위를 점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1969~1973 / 퓨즈라지 스타일을 알린 8세대 뉴요커
1969년 등장한 8세대 뉴요커는 당대의 임페리얼과 같이 ‘퓨즈라지 스타일’을 부여 받으며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제시한다.
7세대의 직선적인 디자인을 기반으로 약간의 곡선을 더하고 추가적인 조율을 통해 더욱 고급스럽고 유려한 실루엣을 자아냈다. 더불어 전면 디자인 역시 한층 간결하게 구성됐다. 여기에 후륜을 살짝 가리는 디자인 포인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7세대 뉴요커는 하드톱 쿠페와 세단 사양 등이 마련되었고 보닛 아래에는 7세대에서 처음 적용된 7.2L 엔진이 적용됐다. 다만 새로운 스타일을 부여 받은 1972년 이후에는 시행된 배출가스 규정에 대응하며 출력 및 효율성이 대폭 하락했다.
1974~1978 / 압도적인 체격을 자랑한 9세대 뉴요커
1974년 등장한 9세대 뉴요커는 7세대와 8세대와 같은 C-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으나 시대의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더욱 화려하고 디자인을 자랑했고, 파워트레인 역시 개선을 거치며 경쟁력을 끌어 올렸다.
수직으로 그려진 화려한 스타일의 프론트 그릴과 큼직한 헤드라이트는 물론이고 직선적인 차체 위에 슬래브를 더하는 스타일은 당대 미국 도로를 달리는 ‘고급스러운 자동차’에게 요구되는 디자인 요소들이었고 뉴요커는 이를 충족시켰다.
1976년에는 앞서 단종된 임페리얼의 디자인 요소를 부여 받으며 더욱 화려한 전면 디자인을 갖추게 됐고 하위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뉴포트와의 차별화 강화라는 효과를 얻었다. 덕분에 시장에서 판매 실적이 향상되는 효과를 누렸다.
9세대 역시 세단과 쿠페 등으로 제공됐고, 보닛 아래에는 각각 5.9L, 6.6L 그리고 7.2L로 구성된 V8 엔진이 마련됐다. 특히 7.2L 엔진은 옵션 사양으로 적용되어 ‘뉴요커 최상위 트림’의 가치를 제시했다.
달라진 시장의 풍경, 달라진 뉴요커
기술적으로 10세대 뉴요커로 알려진 R-바디의 세단은 1979년부터 1981년까지만 판매됐고, 곧바로 11세대로 배턴을 넘겼다. 10세대 뉴요커는 9세대 대비 체격이 작아졌으며, 디자인에 있어서도 더욱 직선적인 구성을 갖췄다.
5.2L와 5.9L 크기의 V8 엔진을 탑재했고, 다채로운 에디션 및 패키지 사양을 선보였다. 더불어 ‘5번가(Fifth Avenue)’로 명명된 독특한 트림을 제시하기도 했다. 데뷔 첫 해에는 5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달성했지만 곧바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1982년 단 한 해만 존재하는 11세대 뉴요커 역시 마찬가지다. M-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존 10세대 대비 370mm 이상 짧은 5,250mm의 전장을 갖춰 ‘달라진 시장의 풍경’을 드러냈다. 더불어 오일 쇼크 이후의 차량인 만큼 3.7L로 배기량을 대폭 줄인 엔진이 적용되었다.
다행스럽게도 11세대 뉴요커는 출시와 함께 5만대의 판매를 이뤄냈다. 대신 11세대 뉴요커는 곧바로 12세대 뉴요커로 대체되고, 11세대 뉴요커는 이후 ‘피프스 에비뉴’ 포트폴리오로 이어지게 된다.
1983~1988 / 새로운 시대를 위한 뉴요커의 등장, 12세대 뉴요커
오일쇼크는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 12세대 뉴요커는 11세대 뉴요커와의 관련성이 크지 않았다.
차량의 기반에서도 전륜구동의 레이아웃을 반영했고, 파워트레인 등에서도 확실한 변화를 이뤄냈다. 직선적인 디자인, 그리고 사각의 디테일이 시선을 끌었다. 특히 지난 11세대까지 5,250mm에 이르던 전장이 4,755mm로 짧아지며 ‘당대의 자동차 산업의 기조’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실내 공간에서는 디지털 요소들을 엿볼 수 있다. 아날로그 클러스터가 아닌 디지털 클러스터를 적용했고, 스티어링 휠이나 각종 버튼 및 다이얼 등의 구성에서도 ‘미래적인 감각’을 담아낸 모습이다. 여기에 전자 음성 경고는 이목을 끌었다.
보닛 아래에는 8기통 엔진 대신 4기통 2.2~2.5L 엔진이 적용됐고, 3단 변속기 및 전륜구동으로 이전보다 한층 효율적인 주행을 제시했다. 12세대 뉴요커는 시장에서의 실적은 나쁘지 않았고, 매끄러운 전환으로 13세대의 시작을 알렸다.
1988~1993 / 풀사이즈 세단의 귀환, 13세대 뉴요커
오일쇼크에 대한 ‘경험’이 쌓인 크라이슬러는 다시 한 번 풀사이즈 세단의 부활을 위한 13세대 뉴요커 개발에 착수한다. 과거의 초대형 세단에 비한다면 여전히 작지만 4,917mm의 전장을 통해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을 강조했다.
12세대와 유사한 직선적인 디자딘을 제공했지만 더욱 깔끔하게 다듬어진 모든은 물론이고 히든 타입의 헤드라이트를 적용해 미래적인 감각을 제공했다. 실내 공간에서도 다채로운 기능과 고급스러운 연출을 계승해 소비자 만족감을 높였다.
보닛 아래에는 V6 3.0L 엔진과 3.3L 엔진이 적용되어 성능의 매력을 제시했고, 4단 울트라드라이브 변속기가 적용되어 더욱 쾌적한 주행 질감을 제시했다. 참고로 전륜구동 외에도 AWD 시스템이 더해져 ‘다채로운 매력’에 힘을 더했다.
13세대 뉴요커는 1989년 10만대 판매고를 달성하며 ‘성공’을 이뤄냈고, 1993년까지 41만대가 넘는 판매 실적을 올렸다.
1994~1996 / 크라이슬러의 욕심, 그리고 마지막 뉴요커
1994년 크라이슬러는 브랜드의 마지막 뉴요커를 공개한다.
13세대가 이전보다 체격이 커졌던 것처럼 14세대 뉴요커 역시 한층 큰 체격으로 ‘풀사이즈 세단’의 위치를 명확히 드러낸다. 실제 LH 플랫폼을 바탕으로 5,268mm에 이르는 긴 전장을 갖췄다. 다만 휠베이스는 2,870mm로 전장에 비해 무척 짧았다.
디자인 역시 변화를 맞이한다. 당대의 MPV 모델로 자리를 잡은 타운 앤 컨트리 등과 같이 곡선이 중심이 되는 디자인을 적용했다. 공기역학을 고려한 얇은 프론트 엔드, 그리고 곡선으로 그려진 차체 및 보닛 라인이 적용됐고, 우수한 개방감을 위한 큼직한 창문이 부여됐다.
실내 공간에는 벤치 시트를 더하고 넉넉한 여유를 강조한 구성으로 고급스러운 차량의 감각을 강조했다. 크라이슬러는 14세대 뉴요커에게 ‘플래그십 세단’의 존재감을 부여한 것이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콩코드, LHS, 그리고 이글 브랜드의 비전 등과 ‘차별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보닛 아래에는 V6 3.5L 가솔린 엔진과 4단 변속기가 적용됐고 전륜구동 및 AWD 시스템이 채택됐다. 더불어 옵션을 통해 더욱 우수한 운도 성능을 보장하는 ‘투어링 서스펜션’을 제공했으나, 이내 옵션에서 삭제되었다.
이러한 선택은 ‘뉴요커의 종말’과 같았다. 사실 상 ‘같은 차량’이라 할 수 있는 뉴요커와 LHS의 구성에서 ‘뉴요커’를 하위 모델로 전락시킨 선택이었다. 때문에 뉴요커는 후속 모델이 없이 단종됐고, LHS는 2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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