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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난간에서 '극단 선택' 남성 껴안아 구한 시민, "꼭 사시라" 부탁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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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난간에서 '극단 선택' 남성 껴안아 구한 시민, "꼭 사시라" 부탁한 이유

입력
2023.02.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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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북 구미대교 난간 위 올라선 남성 구조한 K씨
"두 차례 놓칠 뻔... 39세로 떠난 누나 떠올라 이 악물고 버텨"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도 있으니 부디 열심히 사시길"

2018년 1월 23일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 펜스와 위로 문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1월 23일 서울 마포대교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 펜스와 위로 문구. 한국일보 자료사진

"극단 선택을 시도한 그 남성을 구하면서, 5년 전 38세의 젊은 나이에 암 투병 중 생을 마감한 저희 누나가 떠올랐어요. 그분도 30대 초반으로 보였거든요. 제 누나처럼 정말 살고 싶어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분도 생각하면서 부디 마음 바꾸셔서 열심히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저의 부탁을 그분이 꼭 보셨으면 좋겠네요."

경북 구미에 사는 K(40)씨는 최근 한 생명을 살렸다. 22일 낮 12시 35분쯤 구미대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는 남성을 구해 경찰에 인계한 것이다. 그는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칠 정도로 힘든 시기에 "안 좋은 생각, 위험한 선택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며 당시 상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K씨는 23일 본보와 통화에서 "그 상황에서 누구라도 도와줬을 것"이라며 겸손해했다. 그는 "그 남성의 자세한 사연은 몰라도 힘들고 답답해 나쁜 마음을 먹었던 것 같지만, 치료든 대화든 상담이든 찾아보면 도와주시는 분들 많다"며 "저도 누님이 돌아가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 힘내시라고 가슴에 묻은 누나 얘기를 꺼냈다"고 말했다.

서비스업 15년 종사 눈썰미로, 어두운 표정 포착·신고

K씨가 지난 22일 극단 선택을 시도하려는 남성을 구한 경북 구미시 구미대교 현장. K씨는 난간 바깥의 사다리 모양 구조물 위에 올라선 남성을 뒤에서 안고 버텼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K씨가 지난 22일 극단 선택을 시도하려는 남성을 구한 경북 구미시 구미대교 현장. K씨는 난간 바깥의 사다리 모양 구조물 위에 올라선 남성을 뒤에서 안고 버텼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당시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K씨는 겨울방학이 곧 끝나는 아들(15)과 운동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다리 건너편 공원으로 이동 중에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깔끔한 옷에 새 신발을 신고, 풍광을 보고 있길래 '기분 좋은가 보다' 생각하고 아들한테 '경치 좋지'라고 했는데, 그분 가까이를 지나치며 슬쩍 본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면서 "멍한 시선에 슬픈 표정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래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성을 주시하며 아들에게 "저분 너무 슬픈 얼굴이어서 불안하니까 신고하고 가자"고 한 뒤 휴대전화로 112를 눌렀다. 그의 순간적인 판단력은 서비스업에만 15년가량 종사해 생긴 '직업병' 때문에 발달한 눈썰미가 한몫했다. K씨는 "평소 아무 일 없을 때도 매장에 온 고객의 표정, 심호흡, 자세를 보고 흥분하셨는지 파악해 선제적으로 조치하는 일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K씨가 경찰에 "순찰대를 보내줬으면 좋겠다"며 위치를 설명하는 도중 남성이 난간에 올라 두 팔을 벌린 '타이타닉' 자세를 취했다. 놀란 K씨는 아들에게 휴대전화를 건네고 뛰어가 남성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았다.


"나 수영 못 해요. 우리 대화해요"

K씨는 어려운 시기에 경각심을 심어주고 힘내라는 취지에서 남성을 구한 사연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누리꾼들은 그의 용감한 행동에 큰 박수를 보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K씨는 어려운 시기에 경각심을 심어주고 힘내라는 취지에서 남성을 구한 사연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누리꾼들은 그의 용감한 행동에 큰 박수를 보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K씨는 "아저씨 이러지 마시고 대화 좀 해요. 제가 들어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설득했지만, 남성은 대답하지도 않은 채 다리에 힘을 줘 K씨를 밀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아들, 오지마!"라고 외친 후 남성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K: "조금만 대화하고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아요. 나 수영 못 해요, 아저씨."

남성: "(울면서) 혼자 죽으면 되는데, (이러다) 같이 죽어요. 놔요."

K: "저 죽기 싫어요. 아들도 보고 있어요. 힘 빼시고 대화해요."

이런 대화가 오고 가며 6~7분이 흘렀다. K씨도 팔 힘이 빠져 아들이 가세했고, "도와달라"는 K씨의 외침을 들은 행인도 난간 위 남성의 팔을 붙잡았다. K씨는 다시 "대화하자"고 요청했고, 그제서야 그 남성도 다리의 힘을 풀어 두 사람은 인도 쪽으로 쓰러졌다. K씨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남성을 꼭 껴안고 남성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경찰이 도착해서야 "힘내시라"며 인계했다.

K씨는 "제가 키 193㎝ 몸무게 120㎏인데 그분 역시 저보다 조금 작은 188㎝ 정도에 탄탄한 체격이어서 너무 무거웠고, 팔 힘이 빠져 두 번 정도 놓칠 뻔했다"며 "특히 누나 생각도 나서 이 악물고, 침 흘리면서 꽉 잡았다"고 했다. 또 "나중에 정신 차리니까 손톱이 깨져 있고, 몸이 강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제 다리를 넣었던 철제 난간 일부는 휘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리 난간 너무 낮아 위험... 근본 대책 필요"

K씨의 신고 전화를 받고 구미대교로 출동한 경찰과 구급대원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K씨의 신고 전화를 받고 구미대교로 출동한 경찰과 구급대원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그러면서 "그 남성을 만약 놓쳤다면 저와 아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아들은 아찔한 상황을 지켜본 것 자체가 큰 충격이었는지, 멍한 상태로 귀가해 "만약 그 아저씨가 떨어졌으면, 아빠도 떨어지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라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에 K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성한 글에 달린 '멋지다' '대단한 일을 하셨다' '존경한다' 등 많은 칭찬 댓글을 보여주며 "잘한 행동이고, 그분도 고마워할 것이라고 얘기해줬다"고 했다. 그는 "사연을 남긴 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의도는 물론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는 걸 아들에게 보여주려 한 이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K씨는 경찰로부터 "남성이 가족에게 잘 인계됐다"는 연락을 받아 "그분이 다시 그러실 수 있으니 재발하지 않도록 잘 신경 써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밝히면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그는 "다리의 난간이 너무 낮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며 난간을 높이거나 안전장치 마련 등을 주문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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