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화학물질 노출 하루 200종…어린이들 중독에 더 취약"

입력
2023.02.27 18:10
21면
0 0

[전문의에게서 듣는다] 이성우 서울시 독성 물질 중독관리센터장(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이성우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장은 "화학물질 등 독성 물질에 중독되는 청소년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에 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이성우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장은 "화학물질 등 독성 물질에 중독되는 청소년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에 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가습기 살균제ㆍ라돈 침대ㆍ발암물질 생리대 등 화학물질로 인한 중독 사고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 있다. 여전히 일상에서 접하는 화학 제품에 신경 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오ㆍ남용으로 인한 중독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이에 서울시는 2020년 ‘독성 물질 중독 예방 및 사고 안전에 관한 조례’를 만들고 2021년엔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을 열어 시민 안전에 노력하고 있다.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성우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독성 물질 중독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는 청소년도 3% 내외로 적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일상생활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사례가 많나.

“현재까지 알려진 화학물질은 1억4,000만 종으로 일반인이 하루에 200종까지 노출될 정도다. 세제ㆍ화장품ㆍ플라스틱 등 일상생활용품은 화학물질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화학물질에 중독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특히 어린이들이 위험할 수 있다.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가 지난해 중독 노출과 관련해 상담한 512건 가운데 20세 이상 성인이 397명(77.5%)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청소년(13~19세) 28명(5.4%), 어린이(0~12세) 87명(17.0%)이었다. 중독에 노출되는 화학물질로는 치료 약물(56.6%), 가정용품(12.5%), 인공 독성 물질(8.2%), 식품(5.1%) 순이었다.

이 조사에서 보듯이 12세 이하 어린이가 화학물질 중독에 적지 않게 노출돼 있다. 이들 어린이에게 중독을 일으키는 물품으로는 가정용품(37.9%)를 비롯해 치료 약물(21.8%), 문구ㆍ완구류(11.5%), 기타 생활용품(8.1%) 순이었다. 다행히 중증인 중독 질환은 아주 적었다. 약물 오ㆍ남용 등에 의한 중독은 고의성이 있지만 생활용품을 사용하다가 화학물질에 중독된 사례는 고의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화학물질 중독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눈 여겨봐야 한다.”

-어린이 등이 화학물질 중독에 취약한 이유는.

“어린이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가정용품이나 문구ㆍ완구류 등을 자주 접한다. 그런데 플라스틱 제품은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 같은 프탈레이트계 가소제(可塑劑ㆍ합성수지나 합성고무 등 고체에 첨가해 가공성이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쓰이는 물질)를 사용한다. 가소제는 호르몬을 교란해 남성호르몬 작용을 억제하고 생식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임신 여성이 가소제에 노출되면 태아의 성장 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6~12월 7개월 동안 전국 10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 3,060명 가운데 청소년(13~19세)이 390명(12.7%)이었는데, 중독 문제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청소년에게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로는 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23.3%)과 수면유도제인 벤조디아제핀계 약물(21.2%)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아세트아미노펜 중독 청소년 환자 가운데 45% 정도가 중증이었다.”

-화학물질 중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화학물질이 포함된 제품을 쓰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들 제품을 덜 사용하는 게 좋다. 또한 제품을 사용하기 전 어떤 화학물질이 포함됐는지 알아보고 가능한 한 적게 사용하고 닦아낸 뒤 쓰는 게 중요하다.

어른이 주로 먹는 철분제의 경우 5세 이하 어린이가 먹으면 자칫 위장관이 손상될 수 있지만 이를 알고 있는 부모가 극히 드물다. 이처럼 어린이가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성인보다 중추신경 중독 증상이 심할 수 있다. 따라서 보호자는 생활용품 성분과 사용 시 주의사항, 부작용, 응급조치 요령 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보호자는 어린이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가 집 안이기에 집 안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화학물질에 이미 노출됐거나, 노출 위험이 높다면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에서 독성 물질 정보와 물질별 응급처치법을 확인하는 게 좋다. 증상이 발생했거나 위급한 상황이라면 즉시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화학물질 중독을 줄이려면.

“정부는 화학물질 중독 질환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화학물질 독성 정보를 일반인에게 쉽게 제공하고, 중독 질환 모니터링과 분석을 통해 취약점을 파악해 개선하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또한 새로운 농약ㆍ화학물질ㆍ제품 등으로 인한 독성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는 어떤 일을 하나.

“화학물질 중독 사고는 세계적인 관심사다. 2015년 제70차 유엔 총회에서 발표한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sㆍ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글로벌 보건 이슈 부문’의 주요 목표는 비의도적 중독에 의한 사망률을 줄이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게 독성 물질 중독관리센터 설립 및 운영을 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WHO 동아시아 회원국 중 중독관리센터가 존재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였다. 그런데 올 2월 서울PCC가 WHO 중독관리센터로 등재돼 우리나라도 세계적 표준에 따른 중독관리센터를 확보하게 됐다.

독성 물질 중독 사고는 신속 정확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 단계부터 중독 질환 처치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독성 물질과 관련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콜센터 및 소셜 미디어(SNS) 기반 상담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 보건 서비스이기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으며, 중독 질환에 노출됐을 때 대처하는 법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세계적 수준의 중독관리센터가 된 만큼 공공보건서비스의 양적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관련 연구 활동과 예방 사업의 폭을 넓혀 전국적으로 독성 물질 피해를 최소화하고 예방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