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시각장애 극복한 연주자 김은빈씨
장애 예술인 양성 한빛맹학교, 새 꿈 선사
예술인 지위도 획득... "전문성 증명할 것"
김은빈(33)씨는 트럼펫 연주자다. 학위는 얼마 전 막 취득했지만, 실력은 이미 베테랑 못지않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늦게 음악을 시작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김씨는 사실 5년 전 제주대 음대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젊은 연주자에게 시각장애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떨어졌다. 포기하지 않았다. 한빛맹학교에 다시 들어가 음악전공과를 마치고 ‘인생 2막’의 출발선에 섰다. 16일 만난 김씨는 “장애인이 아닌 예술가로서 전문성을 인정받겠다”며 미소 지었다.
지난 5년간 김씨의 인생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트럼펫은 분신과도 같았다. 첫 만남은 고교 입학식 때였다. “관악부 선배들의 고적대 공연을 보자마자 관현악에 빠져들었죠.” 대학에 진학해 동기들과 밤낮없이 합주에 매진했고, 휴학 기간에도 방과 후 수업 강사로 음악을 가르치며 트럼펫을 손에 놓지 않았다.
시련은 2018년 4월 찾아왔다.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그는 어느 날 새벽 원인 모를 통증을 호소하다 응급실로 실려갔다. 인지하지 못한 고혈압 합병증과 학업ㆍ업무 스트레스가 겹쳐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입원 당일 밤이 되자 시야가 흐려졌다.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진 뒤 장애등급 판정을 받을 땐 시력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았죠. 2년을 꼬박 아무것도 못 하고 밤마다 울기만 했습니다.” 장애로 인한 상처는 꽤 깊었다. 우울증을 극복한 건 타고난 긍정의 힘 덕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니 꿈이 보였고, 시각장애인 전문 연주단 한빛예술단의 구성원이 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생겼다.
김씨의 재도전은 2021년 한빛맹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됐다. 이 학교는 2004년부터 전국 특수학교 중 유일하게 기악, 성악, 작곡, 실용음악 등을 교육하는 음악전공과를 운영하고 있다. 점자 악보를 보는 법은 물론 휴대폰 쓰기, 지팡이 짚기 등 시각장애인의 모든 일상을 여기서 배웠다. 그는 “다시 태어나게 해 준 곳”이라고 했다.
2년 과정을 마치자 기쁜 소식도 날아들었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를 통해 ‘교육훈련기관’ 수료자도 예술인 범주에 포함시킨 것. 김씨뿐 아니라 한빛맹학교를 거쳐간 졸업생 200여 명이 뒤늦게 법적 예술인이 됐다.
이들은 한빛예술단 같은 전문연주단에서 비장애인에 버금가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정당한 지위와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장애인에게 적합한 교육 환경에서 음악을 배우고도 정작 예술인으로서 보호는커녕 행정적 지원조차 전무했던 셈이다. 천성애 한빛예술단 원장은 “음악적 재능이 있는 장애 학생들이 일반학교에 가지 않고도 직업을 선택하고 능력을 증명할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일반 대학을 졸업한 예술인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면서도 늘 위축돼 있었어요.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꿈을 펼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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