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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의 아픔 ‘무명천 할머니’ 삶터, 역사교육장으로 새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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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의 아픔 ‘무명천 할머니’ 삶터, 역사교육장으로 새단장

입력
2023.02.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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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영 할머니 후손 주택 기부채납

제주 4·3 당시 토벌대의 총탄에 턱을 맞아 고 진아영 할머니는 평생을 무명천으로 턱을 감싼 채 살았다.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보존회 제공.

제주 4·3 당시 토벌대의 총탄에 턱을 맞아 고 진아영 할머니는 평생을 무명천으로 턱을 감싼 채 살았다.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보존회 제공.



제주 4·3의 아픔을 상징하는 ‘무명천 할머니’ 고(故) 진아영 할머니(1914~2004)의 삶터가 제주4.3 역사교육의 장으로 새단장한다.

제주도는 진 할머니 후손들로부터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소재 진 할머니의 삶터를 기부채납받았다고 14일 밝혔다.

4·3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1949년 1월 12일 북제주군(현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에 군경토벌대가 밀어 닥쳤고, 당시 35세이던 진 할머니는 집 앞에서 토벌대의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졌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할머니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할머니는 총상 직후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아픔을 견뎌야 했다. 사라진 턱은 하얀 무명천으로 감싼 채 지냈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반편생을 본명 대신 ‘무명천 할머니’로 불리며 죽음보다 더한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다. 할머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물 한 모금 마실 때도 남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만의 언어로 웅얼거릴 뿐이었다.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해 항상 위장병과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았다. 진 할머니는 평생 무언가에 쫓기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집 앞에 나설 때도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잠갔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안방문을 또 다른 자물쇠로 채운 채 지냈다. 평생을 혼자 외롭게 살던 할머니는 2년 넘게 요양원에서 생활하가 2004년 9월 한 많은 삶을 마쳤다. 이후 제주주민자치연대를 중심으로 무명천 할머니 삶터를 보존하기 위한 활동이 이어졌고, 2017년에는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회’가 설립돼 할머니가 살던 한림읍 월령리 자택은 2018년 생전 모습 그대로 삶터로 문을 열었다. 삶터는 토지 93㎡, 건물 18.36㎡ 규모로 생전의 집기류가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생전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할머니를 추모하는 시와 방명록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어서 제주도가 삶터 매입을 추진하려 했으나, 상속권자가 없어 소유권 이전이 불가한 상황 등 삶터 매입 추진에 걸림돌이 많았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후손들의 뜻깊은 기부채납으로 4·3의 기억을 보존할 수 있게 돼 감사드린다”며 “진아영 할머니 삶터가 4·3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보존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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