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회 지도층 입시비리 등은 엄격 판단
사회적 파장 큰 만큼 대개 실형 선고해 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심 선고 직후인 지난 3일 “뇌물 혐의 등 8, 9개 정도 무죄 판결을 받은 점에 대해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지만, 엇나간 ‘자녀 사랑’으로 인한 입시비리와 관련한 대부분 혐의는 유죄 판단을 받았다. 앞서 딸 조민씨 입시비리 등으로 지난해 징역 4년을 선고받아 확정된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도 아들 입시비리로 징역 1년이 추가됐다.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관여 의혹은 향후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가서야 확정되겠지만, ‘진보 지식인’ 내지 ‘진보 엘리트’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조 전 장관을, 또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많은 이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든 사건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해 열녀로 꼽힌 맹자의 모친마저도 흔하게 여겨질 정도로 교육열이 강한 한국에서 입시비리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트리거’이기 때문이다. 형사처벌 여부와는 무관하게 많은 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 배신감을 느끼고, 나아가 공정과 형평성에 대한 회의감마저 토로하곤 했다.
조 전 장관 자녀 입시비리, 사실상 전부 유죄
법원도 특히, 특권층 및 사회 지도층의 입시비리 의혹에 대해선 엄격하게 판단해왔다. 자녀 교육문제에 민감한 우리 현실상 한 번 터졌다 하면 사회적 파장이 큰 만큼 ‘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대개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는 사실상 전부 유죄로 판단했다.
조 전 장관 부부는 아들 조원씨와 관련해 △한영외고 출결 허위 인정 △미국 조지워싱턴대 온라인 시험 대리 △고려대·연세대 대학원 부정 지원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허위 지원 등 혐의 모두 유죄 판단을 받았다.
법원은 이와 별도로 정 전 교수에 대해 조원씨의 한영외고 학교생활기록부 허위 기재 및 동양대 청소년 인문학 프로그램 수료증 위조, 최강욱 의원 명의 법무법인 인턴확인서 위조·행사 등 혐의를 인정했다.
딸 조민씨와 관련한 대부분 혐의는 앞서 대법원이 지난해 1월 정 전 교수의 징역 4년형을 확정했고, 조 전 장관은 이달 3일 법원 판단을 받았다. 조 전 장관은 조민씨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텁십 확인서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장 명의 체험활동 확인서 △동양대 총장 명의 최우수봉사상 표창장 등 위조된 문서들을 서울대 의전원에 제출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비선실세' 최순실도 정유라 입학·학사 비리
엇나간 자녀 사랑으로 우리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사건이다.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로 불리며 국정을 농단했다는 비판을 받은 최씨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정씨의 입학·학사 비리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씨는 정씨가 다녔던 청담고 체육 교사에게 30만 원의 뇌물을 주고, 정씨의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받기 위해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등의 혐의를 받았다.
정씨는 이화여대에 승마 종목의 체육특기자로 수시 입학 및 입학 후 학사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정씨는 입학 면접 당시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에서 따낸 금메달을 지참하고 “메달을 보여줘도 되느냐”고 질문하는 등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또, 학사 과정에서 강의에 나가지 않고 출석을 인정받기도 했다. 출결을 지적한 교수를 찾아간 최씨는 “니가 뭔데 우리 딸을 제적시킨다는 거냐, 고소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유죄 판단을 내리면서 “국민과 사회 전체에 준 충격과 허탈감은 그 크기를 헤아리기 어렵다”면서 “누구든지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결과를 얻으리라는 믿음 대신 ‘빽도 능력’이라는 냉소가 사실일지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우리 사회에 생기게 했다”고 질타했다. 대법원은 2018년 5월 이화여대 입학·학사 비리 등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문제·답안 유출 '숙명여고 쌍둥이' 부친 징역 3년
교사로 재직하면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위해 시험 문제와 정답을 빼돌린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이다.
숙명여고 교무부장이었던 현모(56)씨는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 딸들에게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교내 정기고사 답안을 알려줘 성적평가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2020년 3월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1학년 1학기 전교 석차가 100등 바깥이었던 쌍둥이 중 언니는 다음 학기 5등, 이듬해 1학기 인문계 1등으로 올라섰다. 동생 역시 1학년 1학기 전교 50등 밖의 성적이었지만 2학기엔 2등, 2학년 1학기엔 자연계 1등이 됐다.
현씨와 두 딸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오직 공부를 열심히 해 성적이 오른 것뿐”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영어 서술형 문제의 정답이 적힌 휴대폰 메모,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과목 정답이 적힌 메모 등이 발견됐다. 문제나 정답을 시험 전에 미리 알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현씨)이 비뚤어진 부정으로 인해 금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일침을 놨다. 아버지에 대한 유죄 판단이 내려져 사실상 ‘유출 답안’을 들고 시험을 치른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던 자매는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판결에 불복해 지난해 1월 대법원에 상고했다.
'딸 KT 부정채용' 김성태 의원도 뇌물 혐의 유죄
김성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 의원도 KT에 자신의 딸을 채용해달라고 청탁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고를 확정받았다. 김 전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던 2012년 국정감사 기간 이석채 당시 KT 회장의 증인 채택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딸의 정규직 채용이라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9년 7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의 딸은 2011년 KT스포츠단에 파견 계약직으로 입사했다가 KT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최종 합격해 정규직이 됐다.
당초 1·2심 재판부 판단은 엇갈렸다. 무죄를 선고했던 1심 재판부와 달리 2심 재판부는 “국회의원이 딸의 취업 기회를 뇌물로 수수하는 범행은 그 자체로 매우 부정한 행동”이라고 질타하며 김 전 의원과 함께 사는 딸이 취업 기회를 얻었다면 사회통념상 김 전 의원이 뇌물을 수수한 셈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지난해 2월 유죄 판단을 확정했다.
한 법원 출신 변호사는 “부모로서 자녀를 아끼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자녀 사랑이 범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면서 “엘리트나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빗나간 자녀 사랑은, 그들의 지위가 갖는 막중한 사회적 책임에 비춰 더 엄격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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