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제정된 헌법 41조 2항
"성역할 고정관념 강화·성차별" 비판
총리 "올해 안으로 국민투표 부칠 것"
"어머니는 경제적 필요 때문에 가정에서의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노동에 참여할 의무가 없으며, 국가는 이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일랜드 헌법 41조 2항의 일부다. 1990년대 이후 여성 대통령을 2명 배출한 데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13만1,034달러·추정치)인 부자 나라의 헌법치곤 너무 낡았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올해 안에 해당 조항의 폐지 여부를 거듭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4일(현지시간) 전했다. 1937년 제정된 지 86년 만이다. 2015년 동성결혼과 2018년 임신중지(낙태)를 차례로 합법화한 보수 가톨릭 교회의 나라 아일랜드가 다음 타깃으로 '구식 헌법'을 겨눈 것이다.
해당 조항은 '남성은 생계 부양, 여성은 자녀 양육'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성역할 고정관념을 충실히 반영해 제정 때부터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아일랜드 여성 노동조합 창립멤버인 한나 쉬히 스케핑턴은 "여성을 영구적 열세로 밀어내는 파시스트 모델"이라고 비판했다.
스케핑턴의 지적은 옳았다. 해당 조항은 '여성의 자리는 집 조항'으로 불리면서 여성을 '집사람'으로 가두는 근거가 됐다. 아일랜드 일간 아이리시센트럴에 따르면 정규직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도 여성이 주로 가사를 담당하고 있으며(2021년 통계청 조사 결과), 하루 4시간 이상 집안일을 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많다(최근 유럽연합(EU) 연구).
해당 조항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폐기가 처음 공론화된 건 1993년 발간된 '여성의 지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서였지만 흐지부지됐다. 2013년 시민의회가 재차 폐기를 요구했지만 다시 무산됐다. 2018년엔 찰리 플래너건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엔 미하일 마틴 전 총리가 조항 폐기를 위한 국민투표를 약속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최근 들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다시 나섰다. 이바나 바식 아일랜드 성평등합동위원회 위원장은 "해당 조항은 헌법 본문에서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는 게 오래전부터 합의됐다. 올해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고 압박하는 성명을 냈다.
이에 버라드커 총리가 국민투표 실시를 약속했다. 인도계 이민 2세인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 국민투표를 앞두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2017~2020년 총리를 맡은 데 이어 2번째 임기를 수행 중인 그는 지난해 12월 취임 때 "경제적, 사회적 문제 해결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적 저항은 만만치 않다. 집권여당은 헌법 개정 계획을 즉각 내놓지 못했다. 한 상원의원은 "우리가 영원히 이야기해온 주제인데도 여전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본질적으로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라고 꼬집었다.
"헌법이 아일랜드인 삶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없지 않다. 아일랜드 언론 아이리시센트럴은 "가정에서의 돌봄 노동은 가치절하돼 있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다"며 "성평등이 먼 길을 걸어왔지만 특히 주부들과 무급 가사 노동의 분담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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