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시민 방치해 동사, 차 치여 숨져
윤희근 경찰청장 "죄송"... 수사·감찰 착수
현장선 격앙... "업무 불확실성 해소 필요"
경찰관이 지근거리에 있었는데도 주취자가 숨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경찰의 안이한 근무 태도에 비판이 쏟아지자 경찰 수장까지 직접 나서 사과하고 “엄정 대응”을 약속했다. 하지만 허술한 주취자 관리 시스템도 부실 대응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논란은 지난해 11월 30일 아침 서울 수유동 다세대주택 내 계단에서 60대 남성 A씨가 동사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A씨는 당일 오전 1시 30분쯤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미아지구대 경찰관 2명에 의해 집 앞까지 실려왔다. 거주지는 3층 옥탑방이었지만 경찰은 A씨를 계단에 앉혀둔 채 철수했다. 영하 7도 한파에 방치된 A씨는 저체온증으로 숨을 거뒀다.
지난달 19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오후 8시 45분 동대문구 휘경동 골목에서 50대 남성 B씨가 승합차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 발생 45분 전 휘경파출소 경찰관 2명이 만취 상태인 B씨를 일으키려 했지만 피해자는 거부했다. 경찰이 건너편 순찰차로 돌아간 뒤 그는 일어나 한 골목의 입구 쪽으로 누웠고, 그때 진입한 승합차가 밟고 지나갔다.
경찰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비난이 들끓자 지휘부는 빠르게 움직였다. 미아지구대 경찰관 2명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됐고, 서울경찰청은 휘경파출소 경찰관 감사에 착수했다. 윤희근 청장도 1일 휘경파출소를 방문해 “피해자 가족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두 사건의 경찰 대처엔 분명 미흡한 점이 많다. 다만 주취자 대응 체계를 찬찬히 뜯어보면 경찰에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대응 매뉴얼부터 모호하다.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 보호조치 매뉴얼에 따르면, 주취자는 ①의식 없는 만취자 ②단순 주취자로 분류된다. 만취자는 소방당국에 요청해 의료기관으로 후송하면 된다. 문제는 단순 주취다. “귀가를 권유하며 필요 시 연고자를 확인한다”고만 적시돼 있다. 귀가 권유에 응하지 않고, 주소도 확인할 수 없으면 대응이 쉽지 않은 셈이다. 서울 일선서의 112상황실장은 “단순 주취자는 보호자에게 인계하거나 자택으로 데려다줘야 하는데 자택 범위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경찰이 맡아야 하는 주취 업무량이 과도한 것도 문제다. 서울 같은 대도시의 지구대나 파출소에서는 술과 관련한 업무가 치안활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업무량을 분산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일산 경찰관들도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날 경찰 내부망 폴넷은 “주취자에게 이불까지 덮어 줘야 하느냐” “어느 나라 경찰이 술 취한 사람을 집까지 모셔다 주나” 등 격앙된 글로 도배됐다. 지방의 한 경찰관은 “다세대주택은 아무리 조회해도 주소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미아지구대 경찰관들도 A씨의 주소지를 조회했지만 정확한 호수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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