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으로 이름 알린 장다혜 소설가
신작 장편 '이날치, 파란만장' 발표
부족한 기록에 문학적 상상력 더해
"꿋꿋이 전진하는, 또 다른 해피엔딩"
이날치. 이름 석 자를 들으면 몇 해 전 '수궁가'의 한 대목인 '범 내려온다'를 재해석한 음악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유명 팝밴드부터 떠오른다. 본래 그 이름 주인은 조선 후기 최고의 소리꾼 중 한 명인 이경숙(1820~1892)이다. 노비로 태어나 줄을 타다 명창의 위치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줄을 타는 폼이 날래서 얻은 예명으로, 판소리의 한 유파인 서편제의 제일 명창이 된 그 인생이 평탄치만은 않았으리라.
미술품 거래로 조선의 거상이 된 집안을 둘러싼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탄금'으로 성공적 데뷔를 한 작가 장다혜(43)가 이날치에게 빠져든 지점이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 중인 작가는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2년 전 전작 '탄금'을 출간할 때쯤 출판사(북레시피) 대표님의 아이디어 제안으로 처음 만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한창 밴드 이날치가 절묘한 음악으로 호응을 얻던 시기다.
개인사 기록이 거의 없는 실존인물을 다룬다는 점이 부담도 됐지만, 단 한 문장이 작가의 호기심을 잡아끌었다. '이날치가 당시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서른이 넘어서야 소리판에 들어갔다.' 작가는 치열했을 10·20대 이날치를 상상했다. "또 1830~40년대 시대적 분위기가 흥미롭게 중첩됐고, 결국 소설을 쓰게 됐어요." 장편소설 '이날치, 파란만장'이 그 결과물이다.
주인공 '계동(이날치)'은 전라도 담양 한 양반댁 씨종이다. 소리꾼이 되라던 아비의 유언에 따라 소리를 배우려고 한양으로 도망쳤다. 억척스럽게 연마한 줄타기로 돈을 벌며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애쓴 끝에 아비의 유언을 이룬다. 그 서사는 잔혹하고 애잔하다. 그는 놀이판에서 더할 나위 없이 환호를 받는 반면 일상에선 신분의 미천함 탓에 천대받는다. 소리꾼이 되지만, 가까운 이들을 잃으며 걸어가는 그 길에는 한과 고통이 끈적하게 붙어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전진하는, 세상에 맞설 단단한 내공을 갖게 되는" 결말 또한 해피엔딩의 한 유형이라고 했다. 인생이 그저 괴로움이라, 살아내는 순간 자체가 빛난다는 의미로 들렸다. "광대 '이날치'의 빛과 그림자처럼, 결국 각자가 지닌 (모순의) 간극을 메우는 과정이 삶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소설 속 눈먼 곡비(양반 장례 때 주인 대신 곡하는 종) '백연'과, 공주와 원치 않는 혼인을 한 '의빈 채상록' 등도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들이다.
감정이 극대화되는 장면마다 적절히 배치된 판소리 대목도 재미를 더한다. 다음 생에 앞을 보고 싶다던 '백연'의 죽음 앞에 '이날치'는 심봉사가 눈을 뜨는 '심청가' 마지막 대목을 목청껏 부르며 슬픔을 표한다. '이날치'가 원수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만든 판소리 '아무개전'을 쏟아낼 때는 통쾌함도 느껴진다.
순우리말을 맛깔나게 쓰는 솜씨도 여전하다. 다만 "책을 읽는데 국어사전이 필요했다는 의견을 듣고, 이번에는 어려운 한자 단어나 생소한 한글 단어를 덜어내면서도 제 문체를 가져가려 노력했다"고 작가는 말했다. 한국 전통을 활용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명절(대보름 단오 유두 등)과 전통놀이(활쏘기 엿치기 깨금발싸움 등) 명칭을 활용해 지은 소제목이 눈에 띈다. "산전수전 겪는 주인공 서사에 독자들이 지치지 않게, 판소리 추임새처럼 '얼씨구' 하며 환기시켜주는 소제목들에 가벼운 전통놀이 비유가 적당하다고 봤어요."
성인이 된 후로 20년 넘게 해외 생활을 한 장 작가의 관심사는 언제나 한국 역사와 전통이다. 그래서 차기작의 배경은 또 한번 조선으로 정했다. "그 당시에도 남녀 간의 우정이 있었을까, 하는 단순한 의문으로 시작된 글이 한동안 폴더 구석에 처박혀 있었어요. 이날치가 세상에 나왔으니 그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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