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가 한국의 피렌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포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팬데믹 기간 인문학에 재미를 붙였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예술계 이야기가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흑사병이 지나고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왔듯 코로나19 기간 억눌렸던 우리나라 문화·예술도 확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죠.”(록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
국내 인디 음악계에 연례행사로 자리잡은 ‘경록절’이 올해는 ‘2023 경록절 – 마포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복합 문화축제로 번듯하게 차려입고 새롭게 출발한다. 슈퍼 인싸(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생일파티로 시작해 하룻밤 축제로 확장하더니 어느새 닷새짜리 대규모 행사가 됐다. 음악인들 스스로 만든, 국내 대중음악 역사상 유례가 없는 축제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캡틴락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한경록은 “경록절이라는 이름이 민망스럽기도 하다”면서 “제가 키운 게 아니라 얘(경록절)가 스스로 성장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알아서 크고 있는데 성장을 멈추게 할 순 없잖아요. 그럼 이슈가 되지도 않을 테고. 이제 흥청망청 즐기는 걸 넘어서 의미 있는 행사로 만들고 싶었어요.”
경록절은 1995년 데뷔한 국내 1세대 인디 록 밴드 크라잉넛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인 한경록이 2005년쯤 군 복무 후 컴백을 기념하며 연 자축 생일(2월 11일) 파티에서 시작했다. 슈퍼 인싸답게 음악계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술은 흥을 부르고 넘실거리는 흥은 떠들썩한 웃음과 우스꽝스러운 해프닝, 기억에 남을 즉흥 연주로 이어졌다. 성탄절, 핼러윈데이보다 떠들썩한 날이 매년 이어지자 누군가 ‘경록절’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달력에는 없는 명절이 됐다.
“늘 똑같이 놀면 재미없잖아요.” 경록절이 10년쯤 이어지자 판을 키우고 싶어졌다. 2015년 800여 명 규모의 홍대 앞 공연장 무브홀(현 왓챠홀)이 경록절을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맥주 회사들도 후원사로 거들었다. 인디 음악계 동료들뿐 아니라 김창완, 김수철, 강산에 등 대선배들도 무보수로 무대에 올랐다. 자비로 파티를 열던 한경록은 협찬과 후원금, 기념품 판매 등으로 축제 경비를 충당하며 공연과 술을 무료로 제공했다.
코로나19는 기획자 한경록에게 좌절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안겼다. 2021년 대면 접촉이 어려워지자 ‘이번엔 집에서 놀자’면서 미국, 영국, 일본, 러시아까지 5개국 80여 팀을 섭외해 18시간 논스톱 온라인 페스티벌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사흘짜리 축제로 확장했다. 마포 르네상스가 팬데믹 속에서 발아한 것이다.
올해 경록절은 8~12일 닷새간 온·오프라인에서 열린다. 음악, 미술, 문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120팀 이상이 참여한다. 클럽과의 상생을 위해 마련한 클럽 공연 ‘로큰롤 시티투어’를 제외한 모든 행사는 무료다. 한경록은 텀블벅 크라우드펀딩과 후원금, 기업 협찬 등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할 예정이다.
첫날 8일은 왓챠홀에서 개막식과 함께 김수철, 크라잉넛, 멜로망스 등이 축하 공연을 열고, 9, 10일엔 온라인 공연, 11일엔 홍대 인근 라이브클럽 제비다방, 네스트나다, 클럽 FF, 채널 1969 등에서 40여 팀이 ‘로큰롤 시티투어’라는 제목으로 밤늦게까지 공연한다. 마지막 날인 12일은 이른 오후부터 마포아트센터에서 복합 문화 축제가 펼쳐진다. 이적, 최백호, 소프라노 강윤정 등의 공연이 열리는 한편 김상욱 교수와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이병철 시인이 강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마포아트센터 갤러리맥에선 음악인이자 배우이며 화가인 김창완을 비롯해 크라잉넛 이상면, 일러스트레이터 권민지 등 8인의 작품이 전시된다. 모두 한경록이 직접 섭외했다.
“이젠 더 이상 제 생일이 아니에요. 제 이름이 들어간 행사라서 제가 무슨 대부마냥 우쭐한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더 낮은 자세로 준비해야 이뤄지는 행사입니다. 조금 조용한 생일을 지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느새 의무감이 생겼어요. 힘들긴 해도 끝나고 나면 몇 달 동안 좋은 안줏거리가 되죠.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즐기는 축제가 됐으면 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