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그라운드 누비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기영 기록원
초등생 아들의 뜨거운 한마디에 ‘제2의 인생’ 시작
김기영(51)씨는 14년 전 건설현장 사고로 하반신 마비 지체장애(척수) 2급 판정을 받았다. 웬만한 이였다면 일상에서 비켜난 삶을 살겠지만, 그는 9년째 아마야구 기록원으로 다이아몬드를 주시하며 야구 기록지 위를 질주하고 있다.
불편한 몸, 찢어지는 마음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야구라고 답했다.
그와 야구의 인연은 프로야구 원년인 지난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롯데 점퍼를 입고 나타난 친구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며 그때부터 아버지에게 온갖 생떼를 써서 어린이 회원 가입비 5,000원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조기 마감되면서 아쉬워하던 차. 우연히 부산MBC 사옥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롯데 대신 MBC 청룡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면서 그의 야구 사랑은 시작됐다.
1983년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이사한 뒤에는 삼성 팬이 됐다. TV에서만 보던 장효조 이만수 김시진은 물론이고 운 좋은 날은 최동원, 김봉연 같은 다른 팀 스타들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야구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약 20년간은 사회인 야구선수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건설현장에서 당한 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는 절망의 끝을 마주했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재기의 의지와 용기를 불러일으켜 준 이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큰아들이었다.
김씨는 "나를 대신해 야구를 하겠다고 나선 아들이 대견했고, 나도 다시 용기를 얻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래서 손수 휠체어를 타고 야구장을 다시 찾았다. 김씨는 "그때 누군가 내 옆에 기록지를 놓고 지나갔는데 '나도 기록원을 하면 야구 현장을 다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 길로 김씨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최하는 전문 기록원 양성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경험이나 경력이 전무했던 그는 2010년부터 내리 4년간 낙방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15년 대구야구협회가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록 강습회에 이력서를 넣었고 결국 기록원의 길을 걷게 됐다.
올해 기록원 9년 차에 접어드는 그는 그동안 엘리트 초·중·고·대학 야구 경기 100회, 사회인 야구 경기 500회를 소화했다. 사회인 리그에서는 종종 주심도 맡는다. 물론 휠체어를 타고서다.
잊지 못할 경기는 2017년 초등학교 대회로 기억한다고 했다. 유격수를 보던 선수가 1회와 3회 연속으로 실책을 저질렀는데 문제는 5회였다. 안타를 줘도 되는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별 생각 없이 실책으로 기록한 뒤에야 한 선수에게 하루에 실책을 3개나 준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김씨는 “어린 선수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몇 날 며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절대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는 걸 제가 직접 경험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다 보면 도와주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결국 못다 한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요. 아직까지 우리사회는 따뜻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