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적립금 변화 없고 보험료 인상률도 비슷
재정 위기로 볼 수 없어…정부의 '정치적 프레임'
필수의료 문제 수가로는 안 돼, 인력 균등 배치를"
"그동안 비급여 관리에 소홀했던 책임을 왜 국민에게 떠넘기나요."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연건캠퍼스에서 만난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폐기 움직임을 '정치적 프레임'으로 규정했다. 진영 싸움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발언이지만 단호했다. 일각에선 건보 보장성 강화를 주장해 온 김 교수를 '문재인 케어 설계자'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전 정부에서도 문재인 케어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교수는 "국민에게 '의료비를 적게 쓰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문재인 케어를 지우려는 정부에 날을 세웠다. 국민의 의료 혜택을 강화하는 게 맞지, 일부 오점을 이유로 손볼 경우 그 피해는 국민이 떠안게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을 정치적이라고 보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치상 전혀 아닌데, 이를 위기로 포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케어로 2040년 건보 누적 적자가 678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윤 정부의 전망을 꼬집은 것이다. 오히려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정부가 보류한 근골격계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급여화를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추진 중인 필수의료 강화 정책에 대해선 "수가 중심의 정책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공급자인 의료기관 관리 못한 정부 잘못"
-정부는 문재인 케어로 건보 재정 지출과 함께 가입자의 보험료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문재인 케어 시작 전인 2016년 말과 2021년 말 건보 누적 적립금 규모는 20조 원으로 비슷하다. 보험료를 많이 올려서 그런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건보료 인상률은 2%대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인상률 3%보다 낮았다. 보험료를 많이 걷지 않았고 적립금에 변화가 없는데 어떻게 재정 위기인가."
-문재인 케어 탓에 MRI·초음파 검사가 늘었다는 지적이 있다.
"보장성을 강화하면 일시적으로 일부 남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MRI·초음파 보장성 강화로 남용된 부분은 전체 MRI·초음파 검사비의 9%가량이다. 9%는 2,000억 원 수준으로 연간 전체 건보 진료비 100조 원의 0.2%에 불과하다."
-그럼 정부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 건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한 것이다. 의료 남용이 모든 의료기관에서 골고루 발생했다면 문제가 맞다. 그런데 2021년 건보 보장률을 보면 동네 병·의원급의 경우 검사 남용으로 전년 대비 4.1%포인트 하락(의원)한 반면, 종합병원 이상은 0.5%포인트 올랐다. 병·의원급에서 비급여 진료가 늘었고, 이를 유도하기 위해 불필요한 급여 진료가 동반돼 보장률이 떨어진 것이다. 검사 남용을 유도하는 의료 공급자 책임이다. 공급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건 정부 잘못이다."
"비급여 심사 공백 해결하고 엄격히 관리해야"
-정부가 관리를 못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문재인 정부가) 당초 MRI·초음파 급여를 확대하면서 일정 기간 심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급여 기준을 마련해 비급여 항목을 심사했어야 했다. 보장성 강화를 두고 의사들이 반발하니 과도한 완화책을 내민 것이다. 일종의 의사 봐주기였다."
-그래도 재정을 강화하자는 주장 자체는 맞지 않나.
"건보 지출을 줄여야 하니 국민에게 의료비를 더 쓰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건보 재정만 신경 써 보장성이 후퇴하면 국민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오르고, 취약계층은 건보료를 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보장성 강화와 재정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대책은 무엇인가.
"비급여에 대한 심사 공백 상태를 해결해야 한다. 보장성을 강화하면 비급여 항목이 늘어나 보장률을 떨어뜨린다. 공급자가 비급여 진료를 유도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 또 실손보험이 비급여를 팽창하게 하는데, 실손보험의 역할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권역센터 지정해 전문의 배치 인원 제시해야"
-정부가 곧 필수의료 강화 대책을 내놓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가 인상에 초점을 맞춰 공급체계 개편 및 인력 보강이 눈에 띄지 않는 게 문제다. 수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이미 경험했다. 2009년 흉부외과 수가 인상 정책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 당시 수가를 100% 인상했는데 흉부외과 전문의 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흉부외과를 예로 들면 지역 내 환자 수에 맞게 권역심뇌혈관센터 또는 폐수술센터를 지정하고 환자 수에 비례해 전문의를 균등 배치해야 한다. 대형병원이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지 않게 정부가 병원에 필요한 전문의 수를 정해줘야 한다. 대형병원은 가능한 전문의를 적게 뽑아 수익을 많이 내는 구조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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