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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유산 받기 위해 목숨 걸고 뛰어든 상속 테스트

입력
2023.02.07 04:30
수정
2023.02.24 17:08
22면
0 0

<8> 윤필(글)·임정호(그림) '화폐개혁'

편집자주

세계를 흔든 K콘텐츠의 중심에 선 웹툰. 좋은 작품이 많다는데 무엇부터 클릭할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웹툰' 봄을 통해 흥미로운 작품들을 한국일보 독자들과 공유하겠습니다.

웹툰 '화폐개혁'은 주인공이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치르는 시험 과정을 통해 돈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카카오웹툰 캡처

웹툰 '화폐개혁'은 주인공이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치르는 시험 과정을 통해 돈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카카오웹툰 캡처

지난 4일 추첨한 로또 1등 당첨금은 40억9,036만 원. 내가 당첨자라면 그 돈을 어떻게 쓸까. 로또를 사지도 않고 하는 참 부질없는 고민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 해 보는 게 돈벼락 맞는 상상이다. 2020년 1월부터 카카오웹툰에 연재 중인 '화폐개혁'은 비슷한 설정에서 시작됐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살았던 친부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해 준다는 유언을 남겼다면, 일종의 상속 자격시험에 응할 것인가. 흥미로운 설정의 이 작품은 사회 구조에 대한 예리한 시선과 따뜻한 감성을 절묘하게 보여줬던 웹툰 '흰둥이' 시리즈의 윤필 작가(글)가 임정호 작가(그림)와 손잡고 쓴 웹툰이다. 미스터리한 아버지의 존재를 알아가는 서사도 흥미진진해 드라마화도 결정됐다.

스크롤이 멈춘 그 컷 ①

통장 잔고 약 40만 원이 전부인 주인공은 어느 날 생전에 만난 적이 없었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1조 원이 넘는 유산을 조건부 상속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아버지의 변호사에게 듣는다. 복권 당첨을 상상하게 만드는 설정이 흥미롭다. 카카오웹툰 캡처

통장 잔고 약 40만 원이 전부인 주인공은 어느 날 생전에 만난 적이 없었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1조 원이 넘는 유산을 조건부 상속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아버지의 변호사에게 듣는다. 복권 당첨을 상상하게 만드는 설정이 흥미롭다. 카카오웹툰 캡처

초반부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복권 당첨과 같은 상황을 상상하는 재미가 크다. 수도권 13평 빌라에 보증금 300만 원, 월세 25만 원을 내고 사는 서른두 살의 '유일한'. 프리랜서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는 현재 통장 잔액은 47만3,510원. "몹시 곤란한 인생을 살고" 있는 그에게 예상치 못했던 소식이 전해진다. 처음 들어본 친부 '유태수'의 사망 소식이다. 대리인으로 온 변호사는 "극비로 진행되고 있지만 몇 달 뒤 화폐개혁이 시행될 것"이라고 전한다. 여기서 화폐개혁은 화폐단위를 하향 조정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말한다. 큰 변화 속에 아버지의 자산 총 1조3,028억 원을 지켜낼 능력을 증명하는 게 상속 조건이다. 상속 후보자는 여러 명이고, 상속 테스트에 참가하려면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벼랑 끝에 서 있던 '유일한'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본격 서사가 전개된다.

스크롤이 멈춘 그 컷 ②

재개발 예정지의 주택 하나를 자신의 명의로 갖게 된 주인공은 '가장 적합한 시공사를 고르라'는 상속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재개발 사업의 모순을 깨닫게 된다. 경제를 잘 몰랐던 주인공이 시험이 진행되면서 성장해 간다. 카카오웹툰 캡처

재개발 예정지의 주택 하나를 자신의 명의로 갖게 된 주인공은 '가장 적합한 시공사를 고르라'는 상속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재개발 사업의 모순을 깨닫게 된다. 경제를 잘 몰랐던 주인공이 시험이 진행되면서 성장해 간다. 카카오웹툰 캡처

재건축, 재개발 관련된 전문개념 때문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역할수행게임(RPG) 같은 전개 방식 덕분에 따라가는 일이 어렵지 않다. 평범한 주인공이 시험을 치르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따라 독자도 '가나다'부터 배워나가기 때문. 첫 시험 과제는 '재개발 사업지의 건설 시공사 고르기'다. '유일한'은 재개발 예정지에서 주택을 소유한 조합원이 된다. 부동산 관련 지식이 없었던 그가 한 달간 동네 주민과 재개발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적합한 건설 시공사를 고르는 과정에서, 독자도 재개발 과정을 속속들이 관찰하게 된다. 원주민보다 돈 있는 외지인에게 유리한 재개발 사업의 실체를 '유일한'이 깨닫는 순간에는, 주인공 성장 서사의 기쁨도 맛볼 수 있다.

스크롤이 멈춘 그 컷 ③

화폐개혁이 이뤄진 후 부동산 매매 가격이 7억 원에서 70만 원으로 하향 조정되는 등 현실감 넘치는 장면들이 재미를 더한다. 카카오웹툰 캡처

화폐개혁이 이뤄진 후 부동산 매매 가격이 7억 원에서 70만 원으로 하향 조정되는 등 현실감 넘치는 장면들이 재미를 더한다. 카카오웹툰 캡처

시험 주제가 변할 때마다 현실감 넘치는 가상 상황들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화폐개혁으로 1,000원이 1원이 됐으나 신권 발행량이 적어서 실물 화폐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전자거래가 일반적이다 보니, 불법 자금 수요로 인해 실물 화폐 가치는 액면가액의 1.2배 이상 뛰어버린다. 화폐환수율이 낮은 5만 원권의 현실이 떠오르는 설정이다. 전쟁 발발로 벙커(100명 정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를 통해서는 통조림 따개(탭)가 화폐가 되고 이후 선물옵션까지 등장하는 등 제한된 자원과 인간의 욕망이 얽히면 벌어지는 사태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주제는 묵직해진다. 벼락 맞은 그 돈은 충분한가. 충분하다는 것은 어떤 기준인가. 돈의 가치는 어떻게 잴 수 있나. "하나님이 '돈'이라는 천사를 내려줘서 구원과 영생을 이룰 거라고 믿는다"는 신도들의 등장은 만화적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이다. 복권 당첨의 상상을 떨쳐내기 힘든 게 우리의 현실이니까.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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