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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던 동생"…'인천 의사 뺑소니 사건' 유가족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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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던 동생"…'인천 의사 뺑소니 사건' 유가족 눈물

입력
2023.01.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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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자립심·책임감 강했던 동생"
"회사 일 마치면 아르바이트도 병행"
신호 지키다 음주운전 차량에 참변
'무기징역' 청원했지만 최대 징역 8년

음주운전을 하다가 오토바이 배달원을 치어 숨지게 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 40대 의사 A씨가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음주운전을 하다가 오토바이 배달원을 치어 숨지게 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 40대 의사 A씨가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작은 치킨집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말을 이어가는 게 힘든 듯했다. 며칠 전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면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동생에 대한 애절함으로 보였다. 지난 20일 인천 서구 원당동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숨진 임모(36)씨의 형인 임모(38)씨가 26일 본보와 가진 통화에서 떠올린 아픈 기억은 그랬다. 그는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뉴스로 볼 때마다 ‘안타깝고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내 동생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자립심과 책임감이 강했던 동생은 또래보다 사회생활도 빨리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동생은 오토바이 배달일을 하기 전에는 일반 회사에 다녔다. 동생은 철이 일찍 들었다. 퇴사한 지 1년도 넘었던 회사 선배와 동료들이 장례 기간 내내 장례식장을 지켰을 정도로 회사생활도 성실했다. 퇴근하면 친구들과 만나는 대신 다시 아르바이트를 나가곤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뭐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사냐,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말수가 많지 않았던 동생은 그때마다 “할 만하다”고 웃어 보였다. 1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오토바이 배달원을 하겠다는 말에 “위험하다”고 말리자 동생은 그제야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내 힘으로 돈을 모아서 나도 치킨집 같은 작은 가게를 하나 차리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고 1주일 전이 마지막 통화였다. 형은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꽁꽁 언 길을 달리는 오토바이 배달원들을 마주칠 때마다 부쩍 마음이 불안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위험하니까 그만두면 안 되나. 조심해라”고 하자 동생은 “괜찮다. 지금 좀 바쁘다”고 끊었다. 곧 설이니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설 연휴 직전이었던 20일,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동생을 영영 만날 수 없게 됐다.

심야 텅 빈 도로서 신호 지키다 참변

20일 오전 0시 20분쯤 인천 서구 원당동 한 교차로에서 홍모(42)씨가 운전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중앙선을 넘어 신호 대기 중이던 배달 오토바이로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고 있는 블랙박스 영상. 유가족 제공

20일 오전 0시 20분쯤 인천 서구 원당동 한 교차로에서 홍모(42)씨가 운전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중앙선을 넘어 신호 대기 중이던 배달 오토바이로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고 있는 블랙박스 영상. 유가족 제공

경찰이 확보한 블랙박스로 확인한 동생의 생전 마지막 모습은 차량과 인적이 끊겼던 20일 오전 0시 20분 교차로에서 홀로 멈춰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홍모(42)씨가 운전하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중앙선을 침범한 뒤 맞은편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동생 오토바이를 빠른 속도로 돌진해 들이받았다. “추운 날씨에, 아무도 보지 않을 텅 빈 도로에서 혼자 신호를 지키고 서 있었을 정도로 바보처럼 착한 동생이었습니다.” 형이 전한 동생의 평소 품성이다.

마음이 채 추슬러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사건 공론화를 결심하고 절친한 친구 도움을 받아 음주운전 처벌 강화에 대한 글을 국회 국민청원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게 된 건 동생 사고 기사에 달린 댓글들 때문이었다. 피의자가 인천 모 의원에서 대표로 근무하는 의사라는 기사에 달린 “집행유예로 끝나겠네”, “금방 나오겠네”라는 댓글들을 보면서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동생이 음주운전에 뺑소니를 당해 죽었는데 집행유예라니. 형은 다급하게 음주운전 사고 관련 뉴스와 기사들을 찾아봤다. 음주운전 사고 기사들은 많이 나왔지만, 무기징역 등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은 눈에 띄지 않았다. 피의자가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했다”, “(사람이 아닌) 물체를 친 줄 알았다”고 음주운전과 뺑소니라는 점을 각각 부인하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을 알게 됐고, 그가 의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피의자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나는 것도 가능해보였다.

음주운전에 뺑소니인데도 최대 징역 8년?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숨진 임모(36)씨의 형 친구 차모(38)씨가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 캡처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숨진 임모(36)씨의 형 친구 차모(38)씨가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 캡처

형의 친구인 차모(38)씨는 2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음주운전 사망사고 뺑소니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차씨는 이 글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솜방망이 수준 처벌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것 자체가 살인 미수”라며 “음주운전자들을 선처 없이 무기징역 등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형은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았다면 내 동생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법을 개정해 우리 가족처럼 황망하게 가족을 잃는 사건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는 1만4,894건으로 사망자 수는 206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피의자 홍씨가 무기징역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많아야 10년 미만 징역형을 받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대법원 양형 기준을 감안하면, 4년에서 8년형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면서 “현행 법체계가 음주운전 사고를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정범죄가중법)상 위험 운전 등 치사상 혐의를 추가 적용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씨가 사고를 내고 2시간 뒤에 경찰에 붙잡혔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69%로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수치였지만, 시간당 혈중 알코올 농도 감소량을 토대로 시간 경과에 따른 농도를 역산하면 면허 취소 수준(0.08%)을 넘긴 0.129%까지 볼 수 있다는 이유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개인에 따라 시간당 0.008%에서 0.030%까지 감소한다. 경찰은 27일 홍씨를 특정범죄가중법 도주치사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다.

정 변호사는 “홍씨 스스로 ‘(내가 차로 친 대상이)물체인지 사람인지 몰랐다’고 한 점을 볼 때도, 본인이 위험운전을 했다고 자백한 것인데 경찰이 위험운전 혐의를 추가 적용하지 않은 것은 소극적으로 수사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사고 직후 자신이 차로 친 사람보다 자신의 차만 살펴보고 도주하는 등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의사로서도 이해받기 어려운 행동을 했지만 홍씨 의사 면허는 유지된다. 음주운전과 뺑소니는 의료법상 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생 원룸엔 즉석밥과 라면뿐

인천 서구 원당동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숨진 임모(36)씨가 생전에 조카들과 놀아주고 있는 모습. 유가족 제공

인천 서구 원당동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숨진 임모(36)씨가 생전에 조카들과 놀아주고 있는 모습. 유가족 제공

형은 동생이 남긴 서른여섯 해 흔적을 정리하고 있다. 동생 장례를 치러낸 형이 다시 한번 무너진 것은 동생이 혼자 살던 집 정리를 하면서다. 원룸을 구해 혼자 지내던 동생 방에는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은 흔적이 없이 즉석밥과 라면뿐이었다. 애써 담담한 목소리를 유지하던 형은 “좀 더 잘 챙겨줄 걸 그랬다”면서 울먹였다. 형은 아직도 동생에게 전화를 걸면, 동생이 “왜 전화했어” 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것만 같다고 했다. “‘너 살아 있나 죽었나 궁금해서 전화했다, 인마’라고 말하면, 늘 그래 왔듯 ‘살아 있어’라고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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