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심각하다", 10년간 8번 90% 이상
'이념 대립' 위험... 4년째 갈등 유형 1위
"공론화 통한 해결 필요" 국민 72% 공감
한국사회의 ‘집단 갈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국민 비율이 91%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비중은 2013년 관련 조사가 시작된 후 10년 내내 9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집권했던 이 기간 어떤 정부도 이념, 지역, 세대, 빈부 등을 고리로 한 집단 갈등 해소에 실패한 셈이다. 바꿔 말하면 극심한 대립과 분열이 특정 정치세력이 주도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는 의미도 된다. 갈등 치유를 위해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개편하고 공론화 절차를 법제화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91.1% "갈등 심각"… 10년째 제자리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가 24일 발표한 ‘2022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91.1%는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보통이다’,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은 각각 8.0%, 0.9%에 그쳤다. 집단 갈등이 심각하다는 인식은 2013년(92.8%) 첫 조사 이래 10년간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2020년(89.8%), 2021년(88.7%)을 제외하고 매년 90%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집단 갈등의 심각성을 수치(전혀 심각하지 않다 0점~매우 심각하다 10점)로 평가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평균 점수는 7.6점으로 집계됐다. 지난 10년 동안 이 점수 또한 최저 7.52점(2017년)과 최대 7.75점(2016년) 범위 내에서 움직였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국민 절대 다수가 우리나라의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느끼고 오랜 기간 개선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수ㆍ진보진영의 이념 대립 수위가 더 높아졌다. 14개 갈등 유형별로 심각성을 평가해 보니 ‘진보와 보수세력 간 갈등이 심각하다’ 응답이 86.9%로 가장 높았다. 전년(83.2%)에 비해서도 3.7%포인트 상승했다. 이념 대립은 2019년 ‘경영자와 노동자’ 갈등을 제치고 가장 심각한 갈등 유형으로 부상한 이후 줄곧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진영 대립이 해소되기는커녕 날로 악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영자와 노동자 갈등의 심각성은 2018년 85.7%로 정점을 찍은 뒤 3년간 계속 낮아지다가 지난해 78.6%로 반등했다.
"보혁 모두 일방통행 정책, 갈등 심화"
결과적으로 10년간 역대 정부 모두 갈등 관리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박근혜 정부에선 ‘정부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응답이 2013년 60.1%를 시작으로 57.7%(2014)→63.8%(2015)→71.0%(2016)로 집권 내내 절반을 넘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위안부 합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등 찬반 여론이 첨예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과 무관치 않다. 당시 ‘불통(不通) 정부’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집권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소통’, ‘통합’, ‘협치’를 화두로 띄웠다. 탄핵 과정에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실제 그해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긍정 응답은 73.4%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부정 응답이 25.6%(2017)→47.1%(2018)→48.3%(2019)→52.6%(2020)→55.7%(2021)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이분법 속에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탈(脫)원전, 검찰개혁 등 이해관계가 복잡한 정책을 한쪽 편에 서서 밀어붙인 결과로 분석된다.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적폐’로 몰린 반대 세력은 강하게 반발했다.
"갈등 해소, 제도 보완에서 출발해야"
전문가들은 반목과 대립을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제도적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론도 공론화 절차를 활용해 갈등을 해결하자는 방안에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응답자의 72.1%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갈등관리기본법을 제정하는 것과 관련, ‘필요하다(대체로 필요 58.4%, 매우 필요 13.7%)’고 답했다. 이 법안은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갈등 관리가 필요한 공공정책은 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거제 개편이 시급하다는 응답도 절반을 웃돌았다(55.8%). ‘시급하지 않다’는 의견은 44.2%였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 1곳에서 1표라도 많이 얻은 1명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도 언론 인터뷰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진영이 양극화하고 갈등이 깊어졌다”면서 소선거구제 개편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또한 ‘비례성 강화, 다당제 지향’ 등을 목표로 관련 논의에 착수한 상태다. 이 소장은 “국회가 먼저 나서 갈등관리를 법제화하고 선거제를 개선하는 등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는 공공갈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정기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2013년부터 매년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7~31일까지 전국 성인(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주민등록 인구 현황에 따라 성별ㆍ연령별ㆍ지역별로 비례할당한 뒤 한국리서치 응답자 풀에서 무작위로 추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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