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미술관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 전 열려
“1982년 어느 날 신문 지면에, 지금으로 말하면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40여 개의 개발지구가 발표됐다. 투기의 시작이며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시발점이다. 이 신문 쪽지를 가지고 한 군데씩 지워가며 촬영을 다녔다.” (사진가 김정일)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1980, 1990년대 서울의 재개발 예정지 판잣집 풍경을 담은 사진전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가 서울대미술관에서 13일부터 3월 5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달동네 판자촌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하거나 기억에서 지워내야 할 공간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삶의 터전을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주면서 도시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이번 전시는 사진 196점으로 구성됐다. 1980~90년대 촬영된 것으로 대부분이 흑백 사진이다. KBS 출판사진팀장 출신(김정일)부터 유명한 건축사진 전문가(임정의), 사진으로 이름난 미술관 연구소 소장(최봉림), 건축잡지 사진총괄 부편집인(김재경)까지 1944년부터 1959년 사이에 태어나 오랫동안 사진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작가들이 개인적 작업을 위해 촬영해 두었던 작품들이다. 이들의 사진은 주제나 촬영 기법에서 각자 특색을 드러내면서도 한 가지 공통점을 보인다. 피사체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는 점이다. 작가들은 마을을 여기저기 둘러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시대를 기록하는 관찰자의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김정일의 사진들은 주로 관악구 봉천동 일대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황량한 대지에 세워진 공중변소나 누더기처럼 자재를 덧댄 집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판자를 층층이 쌓아서 만든 가옥이 압구정동 아파트 아래 웅크리고 있는 사진도 보인다. 피사체를 중앙에 두는 방식으로 사진 안에 여백을 만드는 점이 특징이다.
관악구 신림동과 성동구 금호동, 노원구 상계동 일대의 풍경을 찍은 임정의의 사진들은 비탈이나 들판에 다닥다닥 들어선 주택들의 모습을 멀리서 잡아낸다.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 찍은 사진들에선 재개발 이전 밀집 주거지 형태가 잘 드러난다.
성북구 하월곡동, 성동구 옥수동 등을 누빈 김재경은 마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의 사진은 좁은 골목길이나 계단들을 담고 있다. 비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집들은 저마다 문 앞에 작은 계단을 냈다. 오진이 서울대미술관 학예사는 이를 두고 ‘사적 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봉림의 사진에서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동작구 상도동과 관악구 봉천동 일대의 마을을 2년간 꾸준히 출입했다. 한 가족의 모습을 여러 번 촬영한 사진들도 있다. 재개발과 함께 마을을 떠났을 사람들이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 관장은 “토포필리아(장소애)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우리가 살아왔던 것들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재개발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풍경이 사라졌다”면서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 곧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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