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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사회로 표정과 온기, 염치를 잃었다

입력
2023.01.16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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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 사회가 3년의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오피니언 리더 100명에게 물었습니다. 이들의 성찰과 제언을 통해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길을 찾아봅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는 마음과 마음을 멀어지게 했고, 마스크는 얼굴과 함께 온기도 감췄다. 마음이 멀어지고 표정이 감춰지자 염치도 사라졌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당장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늦췄을지 모르지만 마음의 체온을 주고받는 속도까지 늦추면서 사회적 친밀감은 무뎌지고 희미해졌다.

한국일보가 각계 전문가와 칼럼니스트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의 걱정도 마스크 뒤에 가려진 표정과 온기가 사라진 사회적 관계에 가닿았다. 소셜벤처 콰타드림랩의 추현호 대표는 “팬데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강제로 띄워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소속감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게 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온라인을 통한 소통으로도 친밀감과 소속감을 유지할 수 있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 형성이 한창 왕성할 유년, 청소년, 사회 초년생들에겐 더욱 그렇다.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코로나 세대’로 불리는 20학번, 21학번 대학생의 경우 학과 동기들을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면서 “대학 입학 후 동기들과 만나 어울리며 ‘우리 모두 한 학과ㆍ학부 구성원이구나’라고 느껴야 하는데 대면 접촉이 어려워지면서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없었고, 학생들의 사회성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석수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도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으로 수업하다 보니 학생들끼리, 교수들끼리도 서로 모른다”며 “인간 본연의 속성인 사회성이 훼손됐다”고 했다.

사회성을 훼손하는 건 물리적 거리두기뿐만이 아니다.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로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비언어적 표현인 표정이 감춰져 사회적 관계에도 금이 가고 있다. “3년간 디지털 수업을 했는데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디지털 수업에서도 마스크를 씁니다. 인사를 해도 학생들이 누군지 알지 못해요. 나중에 만난 학생이 마스크를 벗으면 완전히 생소한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디지털 공간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하게 되고 감정이입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게 돼요. 표정을 봐야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는데 마스크 쓰고, 디지털로 소통하니 포용성과 배려가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확대해석이라고 하기엔 현실의 변화가 너무도 뚜렷하다. 지난달 JTBC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 701명에게 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의 변화에 대해 물은 결과 약 80%가 아이들의 언어발달이 지연됐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교사들이 언어발달을 늦추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은 것은 마스크였다. 이화여대 아동발달센터도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 서울 마포구ㆍ서대문구 육아종합지원센터와 해당 지역 63개 어린이집에서 만 2세 아이 545명을 대상으로 발달선별 검사를 했는데 이 중 18.34%인 100명에게서 발달 지연이 의심되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2019년 국민건강보험의 영유아 검사 대상자 중 정밀평가 필요 결과를 받은 7.4%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검사 방식과 대상, 규모 등이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도 무시하기 어려운 차이다.

지난해 어린이날 광주 북구청직장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어린이날 광주 북구청직장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다. 연합뉴스

팬데믹 기간 우리가 잃어버린 것으로 ‘표정’을 언급한 응답자들이 아이들의 사회적 성장을 우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출판사 황소자리의 지평님 대표는 “마스크가 일상화하고 외부 교류가 적어지다 보니 타인의 표정을 볼 기회가 줄어들어 평균적인 영유아 언어발달 단계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에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송주영 미술교육자도 “한창 자랄 때 표정을 봐야 뇌 자극이 되고 소통을 배우는데 마스크 탓에 사람들의 다양한 표현을 모르고 지난 2년을 보내야 했다”면서 “미래를 위해, 인구절벽 시대에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서둘러 회복해야 하는 건 표정”이라고 강조했다.

팬데믹은 인류의 정신 건강에도 치명적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팬데믹 첫해인 2020년 전 세계 우울증과 불안장애 사례 비율이 25% 이상 증가했다. 정신과 진료를 터부시하는 한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 결과 2021년 진료를 받은 우울증ㆍ불안장애 환자는 약 180만 명으로 2019년 대비 15.6%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외에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타인의 따뜻한 표정과 체온을 느끼는 것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동물은 본능적으로 접촉을 해야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데 그것이 없게 되면 우울감이 커진다”면서 “팬데믹 기간 우울지수가 대폭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치에만 연연하지 말고 우울지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마스크는 얼굴과 표정을 가리는 방식으로 익명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인간의 염치는 쉬이 자취를 감춘다. 박승현 조선대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 HK연구교수는 팬데믹 기간 잃어버린 가치로 ‘부끄러움’을 꼽으며 자기반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은 자신을 돌아보는 힘이거든요. 팬데믹 기간 사람들은 투쟁의 기술만 배웠을 뿐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가치는 배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겐 영광스러운 일이라도 타인에겐 피눈물이 날 수 있다는 걸 잘 몰라요. 사람이 사람다움으로 가는 길은 염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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