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두고 1심은 무죄, 2심은 징역 12년
"방송 제보만으로 입증 어려워" 파기환송
제주의 대표적 장기미제 사건으로 꼽히는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이 다시 미궁에 빠졌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살인과 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7)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간접증거만으로 A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제주지역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A씨는 1999년 B씨(2014년 사망)와 공모해 검사 출신의 이승용(당시 44세) 변호사를 제주시 관덕정 인근 노상에서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아, 이 사건은 제주지역 최장기 미제 사건으로 꼽혔다.
그러나 A씨가 2020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하면서 사건은 변곡점을 맞았다. A씨는 당시 "누군가로부터 피해자를 다치게 하라는 사주를 받고 B씨와 공모했는데, 일이 잘못돼 이 변호사가 사망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찰은 A씨의 구체적 범행 진술이 공개되자 재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경찰에서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방송에 출연했다”고 말했지만, 그간의 잦은 해외 체류로 공소시효는 소멸되지 않았다. A씨는 이후 캄보디아에서 검거돼 살인 혐의와 SBS PD를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게 살인이 아닌 협박죄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법정에서 "리플리 증후군(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이 있어 제보 내용을 꾸며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는 대부분 가능성에 관한 추론에 의존한 것으로 살인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를 향해 "법률적 판단에 따른 무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A씨 진술의 신뢰성을 인정해 살인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방송에서 살인 사주를 받은 사실부터 범행 실행까지 경위를 묘사하면서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날 A씨의 살인 혐의에 제동을 걸면서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법원은 "A씨의 제보 진술은 주요한 부분에 관해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고, 나머지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위한 추가 증거가 충분히 제출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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