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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위해 귀촌, 12년 만에 마을기업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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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위해 귀촌, 12년 만에 마을기업 꿈

입력
2023.0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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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차선정 부부...자녀 공부서 자유 위해 귀촌
농사 관광 연계 사업 구상

귀농 12년차인 김희수(왼쪽) 차선정 부부가 재배한 딸기를 들고 있다. 이종팔 기자

귀농 12년차인 김희수(왼쪽) 차선정 부부가 재배한 딸기를 들고 있다. 이종팔 기자


귀농 12년차인 김희수(왼쪽) 차선정 부부가 김하수(중앙) 청도군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팔 기자

귀농 12년차인 김희수(왼쪽) 차선정 부부가 김하수(중앙) 청도군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팔 기자

지난해 12월 중순, 경북 청도 매전면 동창천 인근 비닐하우스에서는 딸기 수확이 한창이었다. 귀농 농부 김희수(53)씨와 동갑내기 부인 차선정씨가 딸기를 선별해 포장하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넘어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즈음이었으나, 새벽부터 이어진 부부의 일과는 언제 마무리될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농사일로 지치고 피곤한 시간이었지만, 방문객을 밝은 미소로 맞이했다. 부부의 다정한 모습에서 따뜻한 인정이 느껴졌다.

아이들 교육 위해 귀농 결심

2012년 경북 청도로 내려오기 전까지 부부는 부산에 살았다. 남편 희수씨는 30대 중반까지 등산용품 회사원으로 일했고, 부인 선정씨는 논술학원 강사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등산 클라이밍 동호회에서 만나 평생의 연을 맺었다. 당시 희수씨는 등산 마니아였다. 8,000m 등반을 이뤄낸 이들이 이름을 올리는 산악박물관 인명부에 등록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30대 중반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부부의 귀농 동기는 자녀 교육이었다. 결혼 후 취미 활동을 ‘클라이밍’으로 바꾸고 맞벌이를 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으나 아이들 장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늘 마음에 맴돌았다.

"아이들 곁에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돌보며 ‘공부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요." 아내 선정 씨의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생활로 정서적으로 각박해지기 쉽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아이가 아이답게' 생활하고 또 땅을 밟고 만지며 성장해 나가기를 소망했죠."

부부가 귀농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시기에 아들 근홍은 7세, 딸 효영은 4세였다.

귀농을 결심하고 부산에서 가까운 함창, 거창, 기장 등을 찾아 둘러보았으나 마음에 썩 내키는 곳이 없었다. 결국 풍광 좋고 물 좋은 청도를 귀촌지로 결정했다. 땅이 좋아 딸기를 비롯해 아열대성 고소득 과일을 생산하기 좋고 교통이 편리해서 판로 개척에 용이하겠다는 판단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부의 생각은 옳았다. 청도는 산이 높고 물이 맑은 데다 일교차가 커서 과일이 달다. 또한 대구 부산 경산 창원 울산 포항 등 대도시와 사통팔달 도로가 연결되어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부부는 1억 원이 조금 넘는 돈을 투자해 귀농 기반을 마련했다. 처음 청도에 들어와서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새벽 3, 4시에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뒤로하고 농장으로 나서면서 부부 모두 귀농에 대한 회의감으로 눈물을 삼킨 때도 많았다.

"아이들을 위해 귀농을 선택했지만, 정작 가정의 재정 형편을 생각하면 실질적인 소득이 절실했어요. 밤낮없이 비닐하우스에 매달려 살았죠. 그러다 보니 정작 아이들을 볼 시간이 없었죠."

바쁜 농사일에 아침식사를 건너뛰기도 다반사였다. 아이들을 위해 귀농했지만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짧아졌다. 고민이 깊어지던 즈음 다행히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친정아버지가 청도에 와서 함께 생활하며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공부하지 않고 농사지으면 반드시 실패

반시와 복숭아로 유명한 지역에서 딸기 멜론 애플망고 앵두 등을 농사 품목으로 결정한 것에도 사연이 있다.

"마트에 갔는데 아이들이 애플망고를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형편이 안 되어서 못 사줬어요. 그때 생각했죠. 애플망고 나무를 심어서 아이들에게 마음껏 먹여주겠다고요."

귀농 자금이 넉넉지 않아 농지는 임대로 시작했다. 첫 작물은 딸기였다. 심어놓고 5, 6년을 기다려야 실질적인 결실을 보는 과일나무보다는 빠른 수확이 가능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나름의 요령도 부렸다. 실패를 대비해서 200평의 작은 면적에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이론과 경험을 쌓은 후 규모를 늘렸다.

''하늘 담은 농원(하담원)이란 이름은 국문과 출신의 선정씨 작품이다. 딸기의 품질도 뛰어나다. 당도가 15브릭스 이상이고, 안전먹거리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도 받았다. 귀농 11년 차인 올해는 660㎡짜리 비닐하우스 7동에서 키운 딸기와 함께 4,600㎡의 농지에 멜론을, 2,100㎡에 애플망고, 6,600㎡에 체리를 심었고, 여기에 벼농사까지 더해 연 수입 2억여 원을 바라보고 있다.

농사엔 제법 이력이 났지만 새로운 사업을 선택할 때는 늘 신중하다. 기후 온난화 등으로 농업 관련 데이터가 변하는 등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까닭이다.

두 사람은 늘 공부한다. 선정씨는 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다양한 농사지식 습득을 위해서 경북농민사관학교 2년 과정을 수료했다. 3년째 과정인 농업인 마이스터 과정을 올해 마무리한다. 선정씨는 "처음엔 지식이 없어서 하우스에 바이러스가 창궐해 멜론을 모두 폐기 처분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며 "모든 지식을 다 갖추고 시작할 순 없겠지만 어떤 작물을 지을 것인지 목표를 정하고 그와 관련된 농사 지식을 최대한 습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편 희수씨도 "농사 지식 수준에 따라 생산력이 결정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마을청년회, 의용소방대 활동으로 주민들과 화합

마을주민들과 잘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 희수씨는 정착 초기 마을 어르신과의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가족들보다 6개월 앞서 현장에서 농장일을 보고 있을 때였다. 한번은 마을 어르신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이봐라, 너거(너희들) 밭 옆에 있는 우리 대추밭에 비닐‧먼지 같은 거 날라들게(날아들게) 하지 마래이(마라)."

땅에서 농사를 짓는데 어떻게 먼지가 안 날 수 있을까. 이웃사촌이자 같이 농사를 짓는 동료로 인정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어르신들이 눈에 띄면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냉수를 들고 다가가 건넸다. 그렇게 마을 분들과 얼굴을 트고 인사를 나누기 시작해 지금은 가족처럼 지낸다.

"마을 일에도 내 집안일 같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그는 마을청년회, 의용소방대, 생활개선회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웃사촌이 되려면 지역 공동체에 대한 봉사는 필수다.

그렇게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면서 금슬이 깊어졌다. 누가 봐도 껌딱지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는 여유를 갖고 기다려 준다. 부부간 대화 틈틈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 모습 자체가 훌륭한 교육이리라.

선정씨는 자신의 평소 좌우명인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희수씨는 "먼저 인사하고 다가가서 마음을 열줄 아는 마음씨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농장 한쪽에 자리 잡은 과일 분류 포장 작업장은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이자 아이들의 놀이터다. 일손이 필요할 때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나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가끔은 부모님들이 모여 아이들과 관련된 일화들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캠핑장이 되기도 한다.

이들 부부는 내년이면 귀농 12년 차다. 이제는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취미 활동도 즐기고 있다. 읍내에 나가서 7080부부 노래교실에 참가하고 있다. 전원생활을 즐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의 여유만 해도 마음은 부자가 된 느낌이다. 부부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젠 농사도 관광을 연계해서 먹거리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부부도 그걸 준비하고 있어요. 5년 뒤를 내다보고 기존 농장에 관광농원을 더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역 주민들과 함께 소득 향상을 위한 마을기업 운영으로 6차 산업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부부는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선배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농사는 주인의 정성에서 시작됩니다. 농작물은 주인의 손길이 멀어지면 사람처럼 그걸 알아요. 부지런해야 살아남습니다. 후배 귀농인들과 인연이 닿으면 언제든 성공적인 농촌 정착을 돕고 싶습니다."


이종팔 기자 jebo2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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