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 모친 조마리아 여사 연기로 눈길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는다. 어머니는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어라’고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모친 조마리아(1862~1927) 여사로부터 받은 편지에 남긴 내용이다. 안 의사는 항소를 포기하고 순국한다. 영화 ‘영웅’에서 관객을 가장 울리는 대목이다. 조마리아 여사 역의 배우 나문희(82)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른 노래에 애끊는 모정이 온전히 실려 있다. 역시 나문희라는 평가가 나온다. 4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나문희는 “역할을 맡기 전 조마리아 여사를 잘 몰랐다”며 “정말 특별하신 분으로 안 의사만큼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웅’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순국하기까지 1년가량을 담고 있다. 국내에선 드문 뮤지컬 영화로 동명 뮤지컬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나문희는 “무거운 역할을 싫어하고 국내에서 잘 안 되는 뮤지컬 영화라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하모니’(2010)에 출연했을 때 제작자였던 윤제균 감독이 나를 믿어준다는 생각에, 나도 윤 감독을 믿어서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웅'은 3일까지 180만 명이 봤다.
뮤지컬 장르는 처음이라 노래가 난관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큰딸 도움을 받았다. 노래를 바로 현장에서 녹음하는 방식이라서 촬영을 여러 번 거듭했다. 나문희는 “촬영장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해서 윤 감독이 미워질 정도였다”면서도 “영화가 나오니까 보람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팔순에 여전히 현역이다. 나문희는 “잠을 못 잘 정도로 고생하니 연기 자체는 즐겁지 않으나 현장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 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함께 일하면 너무 좋다”고도 했다. 그는 “아직 철이 없어 그런지 현장에 가면 신이 난다”며 “아마 제가 오래도록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그는 “출연 제안이 들어오면 흔쾌히 받아들이려고 한다”면서도 “단 어떤 작품이든 어느 구석에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우선 현실적으로 공감이 가고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그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유연성”이다.
‘국민 엄마’라는 수식이 따를 정도로 유명인이나 음식물쓰레기를 직접 버리고, 버스와 공중목욕탕을 이용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불경을 외우는 게 취미이자 건강 비결이다. 나문희는 “사람들 알아보는 게 간혹 부담스럽기도 하나 일부러 자연스럽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배우 나문희가 일상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된장찌개를 정말 끓일 줄 알고 그걸 연기하는 것과 흉내만 내는 연기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틱톡 영상물에 출연하고 있다. 나문희는 “소속사에서 해보라고 해서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막상 해보니 매일 움직일 수 있어서 좋다”며 “젊은 사람들 감각을 많이 익히기도 해 잘 시작했다 생각한다”고 했다.
‘아이 캔 스피크’(2017)로 청룡영화상, 대종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에서 여주연상을 휩쓴 후 “상에 대한 여한은 없다”. 나문희는 “그 전만 해도 열등감이 많아 자꾸 누구랑 경쟁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마음이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윤여정처럼 오스카 배우상 수상에 욕심이 없냐고 묻자 “나는 영어를 못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웃었다.
1961년 라디오 성우로 시작한 연기 인생이 올해로 62년. 숱한 역할을 해서 그럴까. “욕심나는 장르나 역할 같은 것은 없다”. 기억에 남는 역할에 대해 나문희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속) 호박고구마가 제일 좋다”고 단번에 답했다. “(우리들) 사는 게 힘드니까, 희극 요소가 많은 게 좋아요.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고 싶냐고요? 아뇨. 사는 것 자체가 힘든데 왜 또 태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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