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 주고 고시원 보내주고 목욕까지
돌아가시기 전에도 노숙인 10여명 챙겨
'거리의 천사' 사망 소식에 추모객 몰려
"이제 술 안 먹고 누나 말 잘 듣고 살 것"
"거리의 천사, 고이 잠드소서."
경기 부천역 광장에서 작은 노점을 운영하며 노숙인들을 돌보다 최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주효정(57)씨를 추모하는 행사가 4일 오후 열렸다. 부천역 광장 노점 상인들로 구성된 햇살상인협동조합 사무장으로 활동했던 주씨는 지난달 27일 부천시 심곡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알려졌다.
이날 추모제는 주씨가 생전 탕수육과 옥수수를 팔던 노점 앞에 마련된 분향소와 인근 청개구리청소년식당 2층에서 진행됐다. 이날 분향소 앞에는 추모제준비위원장을 맡은 물푸레나무청소년공동체 이정아(55) 대표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 대표는 거리의 청소년을 위한 청개구리식당을 운영하며 주씨와 함께 노숙인 문화공간을 마련했다. 이 대표는 "주씨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제도가 못 하는 일들을 했다"며 "많을 때는 50명 정도의 노숙인들을 돌봤는데, 돌아가시기 전에도 노숙인 10여 분을 직접 챙겼다"고 말했다.
주씨의 영정이 놓인 분향소에는 '이제 술 안 먹고 누나 말 잘 듣고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년 동안 탕수육을 챙겨주시고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노숙인들이 적은 것으로 보이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주씨는 5, 6년 전부터 노숙인들을 본격적으로 도왔다고 한다. 교회에서 탈북민들을 도왔던 주씨는 부천역 광장에서 '왕초'라고 불리던 노숙인의 사망을 목격한 뒤 노숙인들의 가족이 됐다.
주씨는 노점으로 출근하면서 광장에서 밤을 지새운 노숙인들이 별일은 없는지 꼼꼼히 살폈고, 한 명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수소문해서 노숙인들을 찾아냈다. 무연고자로 숨진 노숙인은 지자체와 연결하거나 자비를 들여 장례까지 치러줬다. 배고픈 노숙인에게는 탕수육과 반찬을 나눠줬고, 아픈 노숙인은 목욕탕에 데려가 씻겨서 병원에 데려갔다.
그는 특히 주민번호와 주소지가 없어 긴급지원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없는 제도권 밖 노숙인들을 위해 자활시설에 입소시키거나 자비를 들여 고시원을 구해주기도 했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지인과 가족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씨는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노숙인들의 사정을 잘 알기 위해 노력했다. 주씨와 함께 노숙인들을 돌봤던 원건형(50)씨는 "노숙인들과 함께 장을 보고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적이 있는데, 주씨는 요리보다는 노숙인들과의 대화에 더 신경을 썼다"며 "노숙인들은 어린 시절 얘기까지 하는 등 주씨에게는 쉽게 마음을 열었다"고 기억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