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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도 메이드 인 코리아" K조선, 흑자전환 넘어 AI로 '초격차' 시동

입력
2023.01.13 04:30
수정
2023.01.13 10:0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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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고부가가치 뱃고동 '조선업'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관람객들이 5일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HD현대 전시관에서 레저보트에 장착된 자율운항 시연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김형준 기자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관람객들이 5일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HD현대 전시관에서 레저보트에 장착된 자율운항 시연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김형준 기자


#. 최근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현장에 마련된 HD현대 전시장엔 나흘 동안 3만6,000여 명이 몰렸다. 올림픽 무대의 양궁처럼 국내 1~3위 조선사들이 글로벌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상위권을 싹쓸이하며 'K조선'의 위상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최고 조선사로 꼽히는 HD현대 한국조선해양이 제시한 친환경·자율선박 기술이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으면서다.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 실력과 신뢰로 중국의 저가 수주 공세를 뚫어낸 국내 대형 조선사들이 올해를 '기술 초격차' 시대를 열어젖힐 적기로 보고 뱃고동을 울렸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수주전에서 중국에 압승을 거두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부터 이어진 불황의 늪을 탈출한 국내 조선사들은 올해 안정적 흑자 전환과 함께 미래기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저가 수주 경쟁도 지난해로 끝나 ①지난해보다 높은 가격에 LNG운반선을 수주할 수 있게 된 데다 ②컨테이너선·해양플랜트에 이르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③자율운항 선박 등 미래 선박 시운전에 성공하는 등 'K조선 전성 시대'를 열 준비를 마친 셈이다. 선두 한국조선해양뿐 아니라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자율운항 선박 시운전에 성공하며 미래 산업 주도권 경쟁에 나선 점도 희망적이다.



"35년까지 끄떡없다" 다시 시작된 대불산단 입주 '러시'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LNG운반선 내부에서 화물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영암=김형준 기자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LNG운반선 내부에서 화물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영암=김형준 기자


한국일보가 찾아간 조선업 현장 곳곳에선 부활의 분위기가 뚜렷했다. 최근 현대삼호중공업이 위치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에서는 다른 지역 자본가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멈춰 있는 이곳 협력업체 인수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삼호중공업 협력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초까지 60%대였던 대불산단 전체 가동률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며 "삼호중공업이 2025년까지의 일감을 확보한 데다 국제적으로도 건조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에 희망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30년 이후에도 대불산단이 활발히 돌아갈 것이라고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3개 국내 조선사 모두 목표로 삼았던 연간 수주 실적을 초과 달성했고, 올해에도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한국조선해양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총 197척, 239억5,000만 달러로 수주 목표액의 137.3%를 달성했고, 경남 거제시에 조선소를 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각각 목표액의 117%, 107% 초과 달성하며 재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수주 목표치를 넘어섰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이미 15억 달러 규모의 해양플랜트 물량 계약을 따내는 등 올해도 수주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중국과 격차 벌리자"…자율운항 기술 승부수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야드에서 인도를 앞둔 LNG운반선. 현대삼호중공업 제공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야드에서 인도를 앞둔 LNG운반선. 현대삼호중공업 제공


조선업계에선 K조선 전성시대가 기대되는 이유로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기술력과 신뢰감을 꼽았다. 건조 능력만 해도 경쟁 상대인 일본·중국 조선소들과 비교해 월등히 앞선 데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완성도 및 납기일 준수에 대한 신뢰는 중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조선 산업의 가치사슬별 경쟁력 진단과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재작년 기준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종합 경쟁력은 100점 만점에 86.7점으로 2위 일본(84.6), 3위 중국(84.0)을 앞선 전세계 1위였다. 지난해 경쟁력까지 반영될 경우 격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승환 현대삼호중공업 상무는 "단순 선박 건조 기술은 중국이 한국을 많이 따라왔지만 LNG운반선 같은 친환경 선박은 격차가 아직 크다"며 "고장 등으로 멈췄을 때 피해액이 어마어마한 LNG선 등은 비싸더라도 한국산 배를 가장 먼저 찾는다"고 했다.

특히 LNG운반선의 핵심인 보관창고(화물창) 제작 기술은 국내 기술력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영하 163도의 극저온 상태에서 액화 상태를 유지하는 LNG의 보온 기술과 이중·삼중으로 유출을 방지한 방벽 설치 및 용접 능력은 이미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CES 개막에 앞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는 한국 조선업에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라며 "선별적 수주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자율운항 및 연료공급 시스템 등도 K조선의 새 무기다. 한국조선해양은 CES에서 AI 자율운항 기반 LNG 연료공급 관리시스템 'Hi(Hyundai intelligent)-GAS+'를 소개했다. AI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LNG 추진 선박의 자율 운항 능력치와 연료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자회사 아비커스 역시 선박에 탑재된 AI를 바탕으로 최적의 항로를 생성하고 항해하는 레저보트용 자율운항 솔루션을 선보였다. 이는 현재의 대형선박 사업 외에도 소형 레저보트 시장을 돌파할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화물창 국산화, 고질적 인력 문제 등 과제


CES 2023 개막일인 5일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내 마련된 HD현대 전시관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HD 현대 제공

CES 2023 개막일인 5일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내 마련된 HD현대 전시관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HD 현대 제공


K조선 전성 시대를 보다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화물창 국산화를 통한 수익성 개선, 그리고 고질적 인력난 문제 해소 등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국내 조선사들은 LNG운반선을 만들 때마다 5%의 화물창 기술료를 프랑스 가즈트랑스포르 에 떼끄니가즈(GTT) 사에 내고 있다.

예를 들어 2억 달러(약 2,500억 원)짜리 배 한 척을 수주하면 120억 원 이상이 GTT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고자 정부와 국내 조선사들은 '한국형 화물창' 개발에 나섰지만, 앞서 만든 KC-1 일부 제품에서 결함이 발생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현재는 두 번째 화물창인 KC-2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인력 문제 해소도 시급하다. 현장에서는 협력사들 위주로 "일감은 넘쳐 나는데 일손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조선 산업은 배 한 척의 건조 계약을 따내면 최대 수백 개 협력사가 뭉쳐서 해결해야 하는 '조별 과제' 같은데, 청년은 물론 중장년층의 발길도 뜸해진 지 오래다.

삼호중공업 협력사 유일의 유인숙 대표는 "조선업계 종사를 위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조차도 몇 개월만 일하고 농업 등 일당을 더 많이 주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일당을 어느 정도까지 올려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는 실정"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조선 3사 2022년 수주현황.

조선 3사 2022년 수주현황.



'원청'인 조선사 차원에서 전문인력 비자(E-7) 취득 등을 도우며 젊은 인력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울산과 영암, 경남 거제시 등 수도권과 먼 곳에 사업장을 둔 조선소 인근 생활 환경 등을 이유로 반가워 하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사람보다 배를 우선시하는 문화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는다.

한 외국인 근로자는 "일당 몇 만 원에 움직이는 이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상당수는 작업이 느리거나 틀렸을 때 폭언이나 계약 해지를 언급하는 사업장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다쳐 떠나는 이들"이라며 "노동자를 존중해주는 문화가 우선"이라고 짚었다.

라스베이거스·영암=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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