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숨은 영웅들] 사진작가 박재신씨
경계선 지능 아동 위한 개인 사진전 열어
수익 낼 때마다 기부... "시민 응원이 큰 힘"
“경계선 지능 아동에겐 한눈에 이해하기 쉬운 사진이 좋아요. 아이들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아 이 사진을 바로 골랐죠.”
사진작가 박재신(30)씨는 18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사진 한 장을 불쑥 건넸다. 남녀 한 쌍이 포르투갈 포르투의 도루강 앞에서 입맞춤하는 장면이었다. 올해 8월 제주도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올해는 여행같이 살기로 했습니다(Live like journey)’에 전시된 작품 중 하나다. 사진작가에게 첫 개인전은 남다르다. 전업 작가로서 출발을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박씨는 전시회에서 ‘경계선 지능’ 아동들을 향한 마음을 십분 녹여냈다.
'장애 경계' 아동 위해 수익금 전액 기부
경계선 지능은 지능지수(IQ) 71~84 정도로 한글을 읽고 일상생활에서 간단한 돈 계산도 가능하다. 다만 고도의 학습능력이나 사회적응 능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말한다. 비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의 경계에 놓여 있어 ‘더딘 아이’ ‘느린 학습자’로 불리기도 한다.
박씨는 이번 개인전에서 경계선 지능 아동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작품을 여럿 전시했다. 아이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유럽 여러 나라의 색다른 풍경을 담되, 어렵지 않은 주제를 택했다. 사진전 제목에도 경계선 지능 아동들이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꿈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투영돼 있다.
그는 사전에 방문객들에게 수익금이 경계선 지능 아이들을 위해 쓰일 거라 공지했다. 실제 수익금 전액을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에 기부했다. 지난해 제주관광협회에서 주관한 사진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내놓은 데 이어 두 번째다.
취지에 공감해 주는 관람객이 많아 더없이 뿌듯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굿즈(상품) 가격보다 10만~15만 원을 더 지불했고, 다른 관람객은 앞으로 경계선 지능 아동들에게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제주도 여행을 하다가 전시회 의도를 듣고 아내와 함께 한달음에 달려온 특수학교 교사도 있었다. 교사는 박씨 손을 꼭 쥐며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경계선 지능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박씨는 “개인전을 준비하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 한마디에 힘든 게 눈 녹듯 사라졌다”며 “기부 이상의 무언가를 해낸 것 같아 뭉클했다”고 말했다.
"어려움 처한 아동에게 용기 주고파"
박씨가 경계선 지능 아동에게 시선을 두게 된 건 2018년부터다. 당시 2년 정도 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할 때 이들을 만났다.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연극을 하며 친밀도를 높였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한계를 느꼈다. 경계선 지능 아동에 맞는 교육 제도가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초기 교육이 중요하다. 천천히, 반복적으로 학습하면 평균 지능 범주로 발전하지만, 반대로 방치되면 지적장애 수준으로 퇴행할 수도 있다.
이에 박씨는 올 2월 전업 사진작가로 직업을 바꾸고 경계선 지능 아동들을 위한 ‘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전을 열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이 경계선 지능 아동의 존재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작가 한 명이 뭘 얼마나 바꿀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는 “작은 관심이 한 아이에게 새 삶을 선물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본인의 경험이 믿음의 바탕이 됐다.
박씨는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지금도 당시 얘기를 털어놓기 힘들어할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에게 버팀목이 되어 준 사람은 복지센터 상담사였다. 고민을 허투루 듣지 않고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 상담사를 박씨는 틈날 때마다 찾아갔다. 상담 선생님은 박씨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였다.
“상담사 형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제 사진을 통해 어딘가 있을 또 다른 박재신이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앞으로 마음 맞는 사진작가들과 합동 기획전을 열어 좀 더 많은 수익금을 기부할 생각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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