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교양 부문 수상작] '인류본사' 저자 이희수
“우리 사회에서 아직 소수 주제인 중동ㆍ오리엔트를 다룬 책이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다니,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되네요. 동양ㆍ서양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될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이희수(69)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중동 역사야말로 인류사의 뿌리라고 확신한다. 5,000년 인류사에서 근대 이후 200년을 제외한 나머지 4,800년은 중동ㆍ오리엔트, 즉 중양(中洋) 문명이 역사를 이끌었다. 유럽ㆍ중국에 치우친 세계사를 보다 균형 있게 보게 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상을 받은 ‘인류본사’가 이룬 성취다.
책은 튀르키예(터키)에서 발굴된 인류 최초 문명 괴베클리 테페부터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티무르, 오스만제국 등 찬란한 중동 문명을 복원한다. 이들은 중동ㆍ아시아ㆍ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동ㆍ서양과 경쟁하며 교류하며 인류를 발전시켰다. 중양에서 기원한 고도 과학기술, 세련된 예술문화, 체계적 통치 체제는 실크로드를 타고 동ㆍ서양으로, 나아가 한반도로 퍼져 나갔다.
우리 학자가 우리 시각으로 중동 통사(通史)를 저술한 것 자체가 처음이다. 이 교수는 “튀르키예에서 1만2,000년 전 초고대 문명 괴베클리 테페가 발굴돼 고고학계를 뒤흔들면서 저도 자신감을 얻었습니다”라며 “인류 문명이 중동에서 시작됐고, 후예 문명과 국가들이 연이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 중동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해석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제국을 이룬 문명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고 했다. “관용의 거버넌스(통치 체제)를 갖추고 나와 다른 생각과 제도를 받아들인 국가는 번성했고,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다른 생각을 쳐냈던 국가는 쇠락했습니다.” 국적, 이념,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혐오하고 배제하며 고립될 것인가. 갈림길에 마주한 한국 사회에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출판사와 함께 책을 기획하고 실제 펴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6년. 책에 소개된 지역은 단 한곳도 빠짐없이 답사할 만큼 ‘정직하게’ 썼다. 배제된 역사를 복원해 중동과 소통할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1970년대 중동을 다녀온 한국 건설 근로자들이 100만 명입니다. 어마어마한 인적 자산인데도 우리는 중동 전문가를 양성하지 못했고, 중동 연구는 세계 최하위권이죠. 중동 국가들과 지속 가능한 협력을 이루려면 인문학적 하부구조부터 키워야 합니다.”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은 이 교수에게도 ‘사건’이다. 튀르키예 첫 한국인 박사인 이 교수는 지금까지 약 80여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고, 일부는 영어, 아랍어, 이란어로 번역될 만큼 해외에서도 평가받는 중동·오리엔트 전문가다. "중동 연구 40년 동안 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라며 웃었다. “국내에서는 평생 변방, 주변부, 비주류로 남을 줄 알았는데 이제 인정받은 기분입니다. 소외된 지역 문화를 공부하는 후학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2013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학술 부문에서 ‘실크로드 사전’(정수일)이 상을 받긴 했지만, 대중적인 저술 교양 부문에서 중동을 다룬 책이 수상한 것도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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