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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난쟁이들

입력
2022.12.2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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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용산 재개발지역 참사 현장에서 소설가 조세희씨가 난쏘공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용산 재개발지역 참사 현장에서 소설가 조세희씨가 난쏘공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5일 타계한 작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도시화·산업화의 물결 속에 삶의 기반을 빼앗긴 소외계층 문제를 다룬 연작소설집이다. 엄혹한 현실과 작가들과의 긴장이 팽팽하던 1970년대 '폭탄'을 던진 작품(문학평론가 김병익)이다. 황석영 방현석 안재성 등 비범한 작가들이 노동문학의 지층을 두껍게 했지만 조세희의 ‘난쏘공’만큼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인정받은 작품은 전무후무하다.

□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던 만큼 작가의 부고가 전해진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 책에 얽힌 회고담들이 속속 올라온다. 1977년 대학 3학년이었다는 한 정치학자는 학교신문(고대신문)에 사회구조 문제에 집중한 ‘조세희론’을 발표했다가 신문이 당국에 압수당할 위기에 처했던 일을 회상한다. 고등학교 때 미술교사에게 이 책을 선물받은 뒤 어렵고 어두운 내용이라 포기하고, 헤르만 헤세를 읽었지만 대학 때 다시 읽고 충격적으로 감동을 받았다는 소설가의 회고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 책을 읽고 “사회의식과 실천의지를 키울 수 있었다”는 짧은 추모글을 올렸다.

□ 이 소설의 배경인 개발시대의 절대빈곤 문제, 산업공해 문제, 착취적 노동현실은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난쏘공'이 2000년대 이후부터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이 소설이 정전(正典)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자는 성장시대의 논리로부터 자유롭게 된 시대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2005년 이 소설 200쇄를 기념해 가진 인터뷰에서 “세상이 밝아진다면 제 소설이 잊혀질 수도 있겠지요”라고 말했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담담한 어투였다.

□ 그러나 세상은 작가의 기대만큼 밝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악덕한 재벌(은강재벌)과 소외된 노동자(난쟁이)로 선악이 분명하던 개발시대와 달리, 지금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도 모른 채 ‘알고리즘’이라는 상사에 복종할 정도로 현실이 복잡해졌다. 물론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하며 농장주들의 통제를 받는 농촌의 이주노동자들, 비싸고 화려한 집들로 채워진 도시 뒷골목의 15만 개나 되는 고시원에서 버티는 비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 등 ‘난쟁이’들의 목록은 여전히 길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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