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무서워하던 개가 우리 집 사랑둥이로 변한 이야기
연말이 되면 방송사에서 각종 시상식을 열죠? 1년간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람들에게 트로피를 선사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동그람이에서 2022년 최고의 반려인 상을 선정한다면 어떤 분에게 상을 줘야 할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인 에디터 시점으로만 따진다면) 최고의 반려인 상은 기다릴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분에게 주고 싶어요. 반려동물 입양 후 필수 조건은 기다림입니다. 새 환경에 맞닥뜨린 개가 충분히 적응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자세. 이거야말로 한 마리의 개가 반려견으로 적응하는 최고의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동그람이 에디터는 이 기다림을 너무나 멋지고, 완벽하게 해낸 보호자를 찾아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서웠던 개를 사랑둥이로 변신시킨 이 반려인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라고 에디터에게 말했습니다. 아마 저 한 마디를 하기까지 반려인은 수십, 수백 번의 조급함, 불안감을 느꼈을 거예요. '이 강아지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계속 나를 거부하면 어떡하지?', '이대로 계속 기다려도 괜찮을까?'하는 생각말이죠. 하지만 최근 유행한 말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처럼, 이 보호자는 기다리는 마음을 꺾지 않았어요. 덕분에 삭막한 세상 속 행복한 반려가정이 추가됐습니다. 반려견의 이름은 배추(3세)입니다. 서울시 성북구에서 엄마, 아빠와 살고 있어요.
배추의 성격을 먼저 전할게요! 우리 배추는 양갓집 규수 같은 차분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배변 실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가족이 된 후 한 번도 입질을 하거나 짖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에겐 항상 사랑스러운 미소만 보여주는 게 바로 배추입니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여행지, 식당,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배추는 얌전히 기다립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은 안전하다는 것을 배추는 그 누구보다 잘 알죠. 이 정도면 프로 반려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배추가 행복한 견생을 살아가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배추는 세상 모든 게 공포였고, 무서움이었어요. 이런 배추가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준 게 지금의 보호자입니다.
배추의 과거 속으로
: 겁 많던 세상 쫄보 강아지
배추는 아주 어렸을 적 전북 군산에 있는 월명산에서 어미견&자매 강아지와 함께 구조됐다고 해요. 이후 유기견 보호 시설로 옮겨진 배추는 사람을 극도로 무서워했죠. 경계심이 너무 심해 보호 시설 직원들의 손길도 모두 거부했습니다. 보호 시설 직원들이 손도 못 댈 정도니 목욕이나 발톱 깎기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겨울이 돼 추울까 봐 옷을 입히려면 적어도 직원 3명이 배추를 붙잡으려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기다림, 개의 삶을 바꾸다
배추의 보호자는 배추를 임시 보호하며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요. 워낙 겁이 많고, 사람을 경계하던 배추였기에, 그저 편안히 있게 해주려 보호자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제때 밥을 주고, 용변은 깨끗하게 치워줬지만, 그 외 무리하게 만지거나 안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배추는 무슨 소리만 들리면 구석 혹은 켄넬로 도망가는 숨기의 달인이었어요. 온종일 켄넬에 들어가 두 눈만 굴리며 절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죠. 밤이 돼 사람들이 잠이 들면, 그제야 나와 밥을 먹고 볼일을 봤으며, 장난감도 가지고 놀았대요. 그러다 다시 새벽이 되면 후다닥 켄넬로 돌아가는 식이었죠.
이렇게 시간이 지나자 배추는 조금 안심했는지, 사람이 바로 옆에 있지 않고 큰 소리만 나지 않으면 켄넬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이때 보호자는 리드줄 착용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임시 보호 후 안전 문제로 산책을 한 번도 못 나갔고, 산책을 나가기 위해선 리드줄 교육이 필수였죠. 배추가 리드줄을 안전하다 느끼고, 몸에 착용하기까지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우리 배추는 결국 성공했습니다.
배추는 리드줄을 하고 집안을 천천히 걷는 연습을 했어요. 이때 보호자는 무한 칭찬을 쏟아냈다고 해요. 리드줄을 하고 한 발자국만 걸어도 폭풍 칭찬&간식을 선물했죠. 배추는 생전 처음으로 따스한 말을 듣고,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점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배추는 이때부터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보호자들에게 다가가 꼬리도 흔들고요, (보호자가) 배추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도 있었죠. 배추는 겁에 질린 눈빛이 아니라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보호자들을 바라봤다고 해요. 그렇게 세 달이 지난 후 배추는 완전히 다른 개로 변했습니다. 겁쟁이 쫄보 멍뭉이가 아니라 가족을 믿고 따르는 반려견이 된 거죠! 배추가 마음을 열어준 게 너무 고마워 배추 보호자는 임시 보호를 종료한 2021년 2월 입양을 진행했어요.
산강아지 출신답게
배추의 최애 산책 장소는 산!
마음의 문을 활짝 연 배추는 이후 외부 산책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지금은 산책을 사랑하는 댕댕인데요, 이런 배추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 장소는 산입니다. 과거 산에서 구조된 경험이 있었던 탓일까요? 산에 살았던 기억이 남았는지 산에만 가면 더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보호자보다 앞장서 걸어간다고 해요. 덕분에 배추 보호자는 주기적으로 산을 타게 돼 반강제 체력훈련을 받고 있다네요!
배추의 불안감 없애기 교육!
배추 보호자는 배추를 입양한 후에도 꾸준히 둔감화 교육(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해 그 자극에 덜 민감해지도록 하는 것)을 진행 중입니다. 배추가 낯선 환경에 가거나 소리를 들었을 때, 겁을 내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죠.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얼마 전 배추 보호자는 반려견 전용 드라이룸을 구매했어요. 드라이룸을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가는 배추를 보며 보호자는 고민에 빠졌죠. 어떻게 하면 배추가 드라이룸을 겁먹지 않고 잘 쓸까 생각했다는데요. 우선 배추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드라이룸에 꽉 채워 넣어 놓기도 하고요. 평소에 잘 주지 않는 특급 간식(큰 육포)을 이용해 드라이룸에 들어가도록 유도했습니다. 또한, 드라이룸에 들어왔을 때 좋아하는 우유를 주는 등 칭찬과 보상을 끊임없이 제공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배추는 현재 드라이룸에 누구보다 잘 들어가는 멍뭉이가 됐습니다. 드라이룸 바람 쐬는 걸 누구보다 즐기는 편이죠. 이 정도면 배추를 더 이상 겁쟁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겠죠?
배추야. 안녕!
불안하고 지쳐있던 너의 눈빛에 마음이 아플 때도 많았지만
나를 조금씩 믿어주고 밝아지는 배추를 보며 힘을 낼 수 있었어.
우리 만난 지 벌써 2년이라니 시간 정말 빠르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애써준 것 알고 있어. 늘 고마워.
앞으로의 시간을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 채워나가자.
배추야 많이 사랑해.
배추의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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