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6일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첫날 공연 리뷰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 부상으로 김선욱 대타 지휘
지휘자 김선욱의 지휘봉이 내려오고 청중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자 지휘자는 객석을 향해 인사한 뒤 뒤돌아서 단원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단 나흘간의 준비, 이틀간의 리허설로 무대를 무리 없이 완성할 수 있게끔 믿음으로 함께해 준 단원들에게 전하는 '대타 지휘자'의 감사 인사였다.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 마지막 정기 공연 '2022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 합창'의 첫 무대(15, 16일은 롯데콘서트홀)는 여러모로 화제였다. 코로나19 여파로 연주 편성을 줄이고 합창단은 마스크를 쓴 채 무대에 올랐던 지난 3년과 달리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87명, 성악가 4명, 합창단 119명 등 총 211명이 무대에 올라 제모습을 갖췄고 그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낙상 골절상을 입은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을 대신한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의 대곡 지휘 도전이 관심을 모았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연말 클래식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지만 대편성에 합창단까지 필요한 곡이어서 상임지휘자가 아닌 이상 지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2년 차 지휘자'인 김선욱이 "만 34년 일생에서 가장 고심한 끝에" 공연 일주일 전에 대타 지휘 제안을 수락한 이유다. 서울시향은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포디엄에 선 수석 부지휘자 윌슨 응에 이어 2년 연속 대타 지휘자에게 '합창' 지휘를 맡겨야 했다.
공연 전날 기자들과 만나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나흘간 '자발적 격리' 속에 온 영혼과 정성과 생각을 다 투입해 후회없이 준비했다"고 했던 김선욱은 생애 첫 '합창' 지휘를 보면대 없이 암보(暗譜)로 지휘하는 자신감을 보였다.
김선욱은 단원들에게 어떤 주문을 했느냐는 질문에 "귀가 들리지 않던 베토벤을 상상하며 데시벨의 한계를 넘어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와 음향을 생각해 달라고 했다"고 답했다. 그래서인지 1악장부터 다이내믹(셈여림)과 템포의 낙차를 크게 가져가며 극적인 연주를 추구하는 듯 보였다. 준비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정교한 소리를 빚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단원들도 혼신을 다해 지휘자를 따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휘자와 연주자 간 교감은 후반부로 가면서 긴밀해졌고 하이라이트인 4악장은 안정적으로 연주됐다. 독창자들과 합창단의 높은 수준도 빛났다.
김선욱은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의 길로 들어설 때 멘토로 삼는 지휘자 정명훈에게서 "시간이 걸린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아닌 지휘자 김선욱으로서 자리 잡는 데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날 그는 자신의 가능성과 존재감만은 확실하게 보여줬다.
영국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등과도 호흡을 맞추며 지휘자로서의 역량을 증명해 온 김선욱은 내년 6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월 서울시향의 정기 공연을 지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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