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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꿈, 환갑 넘어 이뤘네요"... '인생 2막' 연 시니어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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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꿈, 환갑 넘어 이뤘네요"... '인생 2막' 연 시니어 배우들

입력
2022.12.14 15: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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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시니어배우학교
올해 8~11월 연기, 영화 분석·제작 등 수련
전직 공무원, 가정주부 등 참가자 면면 다양

9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에서 '2022 시니어배우학교'에 참여한 김대진(왼쪽)씨와 김경희씨가 한국영화 포스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9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에서 '2022 시니어배우학교'에 참여한 김대진(왼쪽)씨와 김경희씨가 한국영화 포스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가장 중요한 대사가 ‘오늘은 여기까지’인데, 감정을 담아내는 게 쉽지 않더군요.” “‘익숙해지려면 하루가 짧아요’란 대사가 기억나요. 내일이면 얼굴이 바뀔 연인을 향한 아쉬움이 녹아 있어요.”

9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에서 만난 김대진(69), 김경희(63)씨가 영화의 한 장면을 복기하며 감상평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2015년 개봉한 영화 ‘뷰티인사이드’를 20분짜리 단편영화로 각색한 작품에 출연했다. 뷰티인사이드는 어린이, 노인, 외국인 등으로 매일 얼굴이 바뀌는 희소병을 앓는 남주인공 우진과 그와 사랑을 키워가는 여주인공 이수의 이야기다. 단편영화에서 김대진씨는 우진, 김경희씨는 이수를 연기했다.

두 이는 전문배우가 아니다. 김대진씨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6년 전 은퇴했고, 김경희씨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이들이 늦은 나이에 배우로 ‘인생 2막’을 연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삶에 대한 ‘열정이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의 '2022 시니어배우학교' 참가자들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센터 제공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의 '2022 시니어배우학교' 참가자들이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센터 제공

김대진, 김경희씨는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시니어 배우학교’ 출신이다. 센터는 올해 8월 60세 이상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니어 배우 수강생을 모집했다. 사회ㆍ문화 활동에서 소외돼 우울감과 고립감에 시달리는 장년들에게 영화를 통해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전직 공무원부터 회사원, 주부, 자영업자 등 응모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면접을 거쳐 선발된 16명은 9월부터 두 달간 기초발음과 발성, 작품분석, 연기, 프로필 촬영 등 혹독한 수업을 받았고 지난달 수료 성과물로 내놓은 작품이 뷰티인사이드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의 '2022 시니어배우학교' 참가자들이 대본 리딩 연습을 하고 있다. 센터 제공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의 '2022 시니어배우학교' 참가자들이 대본 리딩 연습을 하고 있다. 센터 제공

배우의 꿈은 가족의 도움 덕에 찾아왔다. 김대진씨는 학창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우를 소망했지만, 집안의 반대와 생계 탓에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쳤다. 은퇴한 그에게 ‘영감’을 준 건 현역 배우인 아들 부부였다. 아들은 뮤지컬 배우 김지철, 며느리는 영화배우 신소율씨다. 김씨는 “어느 날 아들 부부 작품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때마침 시니어 배우 모집 공고를 보고 오랜 시간 묻어둔 젊은 날의 꿈이 되살아났다.

평생을 주부로 가족을 위해 헌신한 김경희씨는 “엄마를 떠올리면 밥, 빨래 같은 집안일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자녀들의 말이 자극제가 됐다. 고마움의 다른 표현이었으나, 그는 “엄마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늦깎이에, 연기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배우의 길은 험난했다. 김경희씨는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입이 떨어지지 않아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김대진씨도 “장면마다 끊어 촬영하는 영화 속성상 감정의 흐름을 유지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2022 시니어 배우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16명의 시니어 배우들. 센터 제공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 '2022 시니어 배우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16명의 시니어 배우들. 센터 제공

고생의 결실은 풍성했다. 김경희씨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출연자들끼리 일종의 ‘전우애’도 생겼다. 김대진씨는 “다들 비슷한 처지라 끈끈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고 흡족해했다.

두 사람은 시니어들을 위한 활동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희씨는 “나이를 먹을수록 상실감이 커진다”면서 “장년층이 방황하지 않게끔 물꼬를 터주는 곳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대진씨는 이제 연극 무대까지 넘보고 있다. 내년 설날 마당극 출연을 위해 요즘 연습에 매진 중인 그는 “우리 또래도 아직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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