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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싸운 후 절연한 지 7년, 나에게만 화해 종용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입력
2022.12.19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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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7년 전 동생과 절연했습니다. 정확히는 동생이 저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차단하면서 연락이 끊어졌어요. 해외에 거주하는 저는 얼마 전 한국에 잠깐 들어와 엄마와 동생이 살고 있는 집에 머물게 됐어요. 엄마는 저를 보자마자 동생 이야기를 꺼내면서 화해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벌써 수년째 "네가 언니이니 동생에게 먼저 다가가 달라"며 저에게 일방적으로 화해할 것을 요구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너무 힘이 듭니다.

사실 동생과 싸운 원인은 엄마였습니다. 엄마가 사별 후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는데, 그 아저씨를 집으로 데려왔죠. 저는 평일에 일을 하고 주말에 집에서 쉬었는데 편하게 쉬어야 할 시간에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게 싫다는 내색을 했어요. 그 일로 엄마와 계속 싸웠는데 어느 날은 동생이 "너 때문에 엄마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욕설을 퍼부었죠. 그날 다툼 이후로 서로 대화를 하지 않게 됐습니다.

엄마는 불안이 높고 걱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본인의 인생 이야기와 신세 한탄을 많이 해서 어렸을 때부터 대화를 나눌 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저에게는 관심이 크지 않았어요. 어린 시절 공부를 곧잘 했지만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예요. 저와 달리 엄마는 몸이 아팠던 두 살 터울 여동생은 자신의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 관심을 쏟았죠.

아버지는 제가 17세 때 돌아가셨어요. 그전까지 어머니에겐 늘 거리감을 느꼈어요. 저에게 늘 칭찬보다는 지적을 하셨으니까요. 늘 문제가 있는 아이처럼 보고 대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별 이후 정신은 더 나약해지셨고 장녀인 저에게 의지하셨죠. 저를 붙잡고 신세 한탄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엄마가 어릴 때 어떤 고생을 했고, 지금은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하는 게 고정 레퍼토리입니다.

불안이 높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저는 예민하고 감정기복이 큰 편입니다. 주변 눈치를 많이 보고,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하는 성향도 강해요. 그래서 선뜻 나서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저를 강인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친구처럼 대하는데 저는 엄마의 이야기를 필터 없이 받아내야 하는 게 지금도 너무 힘이 듭니다. 특히 힘든 부분은 동생과 싸운 이야기를 할 때예요. "동생은 약하지만 너는 강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제가 동생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를 바라세요. 동생과의 다툼으로 저도 상처를 받았는데, 엄마는 마치 나의 아픔은 다 해결이 된 것처럼, 제가 속마음을 다 말하는 사람인 것처럼 말합니다.

살면서 엄마가 저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이제 와서 엄마가 나에게 신세 한탄을 하고, 동생과 화해하라고 종용하는 게 원망스럽습니다. 엄마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혀 울 때도 많습니다. 30대가 됐어도 엄마의 한마디에 우는 제가 어린아이처럼 느껴져요. 엄마와 동생을 생각하면 원망과 분노가 올라오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니 당연히 얼굴 보고 행복하게 살아야지"라는 엄마 말이 늘 마음 구석에 남아 있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지원(가명·31세·회사원)

지원씨, 동생과 인연을 끊고 혼자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을까요. 이유를 불문하고 동생과 화해하라고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강요 아닌 강요가 그 짐을 더욱 무겁게 했을 것 같습니다.

7년 전 동생과 싸워서 절연했다고 하지만 그 사건은 일종의 '트리거(방아쇠)'가 됐을 뿐, 이미 전부터 갈등이 있었을 거예요. 저는 당신이 그렇게 결정한 것이 스스로와 상대를 잘 알고 있기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수년이 지났음에도 그 문제가 여전히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것은 왜일까요. 동생이 아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죠.

지원씨와 동생의 다툼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 자매를 키우던 어머니에게까지 가봅시다. 내가 형제자매에 대해 갖는 인식은 보통 부모로부터 옵니다. 많은 부모는 자녀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고, 그것이 핵심 가치인 듯 자녀의 싸움에 개입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안 싸우는 착한 형제자매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것이죠. 다툼이란 형제자매가 성장하면서 서로의 독립적인 경계선을 확인하고 건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다툼 자체를 금기시하고 덮어 두려고 하면 개별 자녀의 고유한 감정을 지지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결국 억울한 자녀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자긍심과 안정감을 갖지 못하게 되죠. 성인이 되어도 가족의 한없는 지지를 기대하느라 정서적인 독립이 어려워집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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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씨의 표현대로라면 어머니는 동생을 '아픈 손가락'으로 여겼고, 지원씨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자주 소외감과 서운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동생과의 다툼 상황에서도 어머니가 객관적인 사실 관계보다는 동생에 대한 정서적 지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을 겁니다. 부모가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지지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막다른 길로 몰아붙이니 지원씨가 달리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어머니는 늘 지원씨를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대했죠.

부모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 부모가 나와 형제자매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아쉬움이 오랜 기간 쌓이면 결국 마음의 화살이 부모가 아닌 형제자매로 향하게 됩니다. 지원씨도 엄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아쉬움을 동생과의 관계에 투사했을 가능성이 커요. 그 와중에도 지원씨의 어머니는 감정 조절이 서툴렀고, 지원씨는 첫째 자녀라는 이유로 감정받이가 됐습니다. 지원씨를 인정해주기보다 비난하고 자신의 감정만 쏟아내는 어머니, 나보다 동생을 더 변호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나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지원씨에게 늘 버겁고 힘든 문제였을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동생과 연을 끊은 것은 지원씨가 스스로 선택한 주도적인 결정입니다. 어머니로부터 감정적, 정서적 지지와 인정을 받아본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그 일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가 또 한번 상처가 됐을 거예요. 그 상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라 혼란을 느끼는 것은 지원씨 입장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어머니가 어떤 부모였는지를 떠나 여전히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보편적인 욕망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결핍감이 클수록 오히려 부모의 바람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 더욱 혼란스러울 거예요.

강조하고 싶은 건 당장 지원씨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기보다 지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없이 자식을 키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어머니가 이유 불문하고 동생을 변호하는 데 따른 원망, 동생과 인연을 끊으면서 느꼈던 억울함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까지요. 모순으로 보이지만 이런 감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타인이 정해준 나의 정체성에 맞춰 어느 한쪽으로 교통정리를 하려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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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음이 괴롭지만 길게 보면 가족이 부여해준 역할과 상관없이 자신이 오롯이 주도하는 정체성을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당장 가족과 화해하는 것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다 보면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서서히 변화가 따라올 거예요. 지원씨가 가족이 아닌 자신을 삶의 우선순위에 놓는 것은 당신이 냉정해서도, 불효자여서도 아닙니다. 변한 내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고, 가족 역시 그 변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가족 내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원씨, 동생과 연을 끊고 어머니와 언쟁을 이어가는 한 늘 불편한 감정이 생길 거예요. 그럴 땐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당신이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영향을 알고, 그로 인해 자신이 겪은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부정적 감정들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겁니다. 매우 다행인 건 당신 스스로 가족과 경계를 짓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 경계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탐구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개발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가족이 설정해 준 착한 역할에 국한된 것이 아닌, 무궁무진한 자신의 잠재력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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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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