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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절박한 생존권적 요구라면

입력
2022.12.0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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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정부 인식은 국가정체성 수호 위한 싸움
화물연대도 민노총 정치투쟁의 피해자
지금으로선 파업철회, 대화 복귀가 옳다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하는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대통령의 발언 강도부터 예사롭지 않다. 파업을 북핵에 비유한 게 그것이다. 문민정부 이래 보수 진보정권 모두 강성 노동투쟁에 매번 시달리면서도 쓰지 않았던 표현이다. “핵 불용 원칙으로 대북정책을 펴왔다면 지금처럼 북핵 위협에 처하는 일은 없었을 것” “(마찬가지로 노조 지도부의) 불법행위 폭력에 굴복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라는. 물론 화물연대를 넘어 민주노총(이하 민노총)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불법파업이 북핵만큼 위협적이라는 정도의 말이 아니다. 발언에는 민노총이 더는 노동운동단체가 아니라 친북 용공 반미의 반국가단체와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당정이 공히 ‘이념과 진영’을 운위하고 ‘민로총’이라고 쏘아붙인 게 같은 맥락이다. 이번 대응을 분명하게 국가 정체성 재확립의 전환적 계기로 삼겠다는 의미다.

빌미는 민노총 스스로 제공한 바 크다. 8월 집회에선 ‘한미동맹 해체’ ‘한미 전쟁연습 중단’ 등의 구호 속에 북한 조선직업총동맹의 연대사까지 낭독됐다. “미국과 남조선보수집권 세력은 각종 침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려놓고… 겨레의 머리 위에 핵 참화를 들씌우려한다”는 내용이다. 이전에도 민노총 집회에서 ‘미군 철수’ ‘정권 타도’는 통상적 구호였다.

주사파(NL)가 창립에 관여하고 후신인 이른바 국민파가 여전히 주류인 민노총의 역사를 감안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95년 창립선언부터 ‘외세 지배와 간섭 청산’ ‘조국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주한미군 감축’이 명기됐다. 80년대 운동권의 분단책임론, 신식민지론 등의 치기 어린 이념을 계승한 흔적이다. 이러면 논리적으로 노동운동은 국가정체성을 부인하는 체제변혁의 하위도구가 된다. 노동자 복지증진과 무관한 이런 행태는 노동운동의 당연한 진보성마저 왜곡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간 어느 정권도 제어하지 못했다. 특히 그들이 촛불혁명의 주역을 자처한 문재인 정권 때는 안하무인의 정도가 도를 넘었다. 민주당사에 난입해 점거해도, 코로나 비상시기에 대규모 집회를 강행해도 결국 어쩌질 못했다. 민노총이 실질적인 권력서열 1위라는 비아냥이 나온 게 그즈음이다. 툭하면 산업현장을 멈춰 세우는 전국총파업, 민중총궐기, 전국노동자대회는 일상이 됐고, 현장폭력, 고용세습, 귀족노조 등의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숱한 실책과 과오로 혹독한 비판과 비난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이번 파업에 대한 대응 하나로 최근 지지율 반등의 조짐이 나타나는 건 민노총에 대한 국민 상당수의 염증 때문임을 부인키 어렵다.

그러고 보면 화물연대는 도리어 민노총의 피해자에 가깝다. 여러 자료와 현장얘기를 종합하면 많은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격무와 열악한 작업환경만큼 대우를 못 받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안전운임제가 그나마 숨통을 틔우는 방안이라는 점에도 공감한다. 그렇다면 일단 파업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에 복귀하는 게 옳다. 정말 절박한 생존적 요구라면 민노총의 헛된 기 싸움에 말려 본질적 요구와 먼 피해를 감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전 정권이 만든 3년 일몰제를 3년 더 연장하고 그 효과를 분석해 다음을 논의하자는 정부 입장도 부당하다고 보긴 어렵다. 무엇보다 국가 정체성 싸움으로 보는 정부가 물러설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차제에 여론을 무겁게 인식해 민노총에 근본적 체질변화 고민을 기대하지만 솔직히 난망이다. 개인적으로 정치사회적 갈등 때마다 가능한 중간적 해법을 모색해왔으나 적어도 이번 사안만큼은 그럴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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