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과 애경이 만든 가습기살균제에 포함된 성분물질을 호흡기로 들이마시면 폐를 비롯한 장기로 퍼져 상당 기간 남아 있다는 국가기관의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이 폐 손상을 유발하고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인과관계를 최초로 입증한 것으로,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사건 재판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가습기살균제 성분 물질 중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의 체내 분포 특성을 규명한 연구 결과를 8일 공개했다. 이 연구는 지난해 4월부터 진행됐으며, 전종호 경북대 교수와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방사성 추적자 기술을 활용한 연구 결과, 실험용 쥐의 코와 입에 노출된 CMIT와 MIT 성분이 폐로 이동하는 것이 확인됐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최대 1주일까지 노출 부위와 폐에 CMIT와 MIT 성분이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됐다"며 "성분에 노출된 실험동물의 기관지폐포 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폐 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성 사이토카인 등이 유의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두 성분에 독성이 있다는 것까지는 확인됐지만, 직접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시각적·정량적으로 입증된 것은 처음이다.
CMIT와 MIT는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에서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포함된 성분이다. 이 회사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 메이트'는 옥시 제품 다음으로 많이 판매됐지만, 그동안 직접적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피해지원종합포털에 따르면 CMIT·MIT 성분이 포함된 제품 피해자 수는 1,700여 명(중복 포함)에 달한다. 올해 9월까지 집계된 전체 피해자(4,417명)의 3분의 1에 달하는 숫자다.
이번 연구 결과는 가습기살균제의 또 다른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의 위해성이 밝혀진 지 10년여가 지나서야 나왔다.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부터 진행한 실험 결과 PHMG 등은 '명백한 위해성'이 있음이 밝혀졌고, 이에 2018년 법원은 이 성분이 함유된 제품을 생산·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에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관련 임원 1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유는 "CMIT·MIT 성분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폐질환·천식 발생 혹은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관련 항소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이번 연구에서 얻은 결과를 고려하면 (법원의) 결론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같은 기술로 분석한 것이지만, 이번에 사용된 방사성 동위원소(탄소-14)는 PHMG·PGH 때 사용한 인듐-111보다 반감기가 훨씬 길어 분석하기가 까다로웠다"며 "다행히 CMIT·MIT가 비강→기관지→폐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방사선 영상 기법으로 확인돼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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