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 중장년(40대 이상) 남성들이 책에 푹 빠졌다. 소설ㆍ인문ㆍ자기계발 책까지 중장년 독자가 선택한 책이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출판시장 주요독자가 30ㆍ40대 여성인 흐름을 감안하면 이례적 현상이다. 잇따라 출간된 묵직한 서사를 가진 소설이 남성 독자의 갈증을 풀어준 효과로 보인다. ‘요즘 애들’을 향한 호기심, ‘인생 과도기 지혜’를 주는 책도 중장년 남성의 선택을 받았다.
우선 ‘문학 중년’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2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을 분석한 결과 중장년 남성 독자가 호응한 두 권의 책이 순위권에 올랐다. 지난 6~8월 여름만 하더라도 ‘작별인사’(김영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 ‘친절한 이방인’(정한아) 등 서정적 문체나 SF를 소재로 여성 팬들의 지지를 받은 소설이 10위권을 싹쓸이한 것과 사뭇 다르다.
청년 안중근의 고뇌를 다룬 ‘하얼빈’(김훈)이 대표주자다. 지난 8월 출간 후 9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수성했고, 현재도 7위를 지키고 있다. 전체 독자 가운데 40대 이상 남성 독자가 40%로, 같은 연령대 여성 독자는 29%였다. 난세를 헤쳐 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남성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문학동네 관계자는 "초반에는 남성 독자가 강세를 보였는데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여성으로 독자층이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2위)도 ‘문학 중년’이 끌고 ‘젊은 여성’이 밀어준 작품이다. 40대 이상 남성이 구입한 비율이 34%, 2030 여성은 22%에 달한다. 빨치산 출신 아버지가 죽고 딸이 장례식을 치르며 조문객들을 만나는 줄거리. 이념과 지향이 다른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뭉클하게 그려냈다. 민주화운동 세대는 옛날 감성을 추억하고, 젊은 독자는 ‘아버지’라는 보편적 소재에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부장’도 올 하반기 출판계의 큰손으로 나타났다. 베스트셀러 1위인 ‘트렌드코리아 2023’(김난도)은 40대 이상 남성 독자 비율이 25%로 집계됐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자기계발서인 ‘역행자’(자청ㆍ9위)도 40대 이상 남성 구매자가 19%나 됐다. 사회가 변하는 흐름을 좇아가면서, 청년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화제성을 갖춘 중장년 작가도 동년배 독자를 서점으로 불러 모았다. 베스트셀러 4위에 오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법고전 산책’은 11월 출간 뒤 한 달 만에 12쇄를 찍어 5만 부를 돌파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정 지지층인 3040 남성의 구매 비율이 21%였는데, 5060 남성 독자도 34%에 달한다. 정치적 팬덤, 저자의 유명세, 인문학 서적이라는 특징에 독자들이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인생 과도기 고민과 혼란에 지혜를 주는 책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유노북스에서 지난 9월 낸 ‘마흔에 읽는 니체’는 8만6,000부가 팔려 베스트셀러 8위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펴낸 ‘오십에 읽는 논어’(최종엽)는 15만 부가 나갔다. 이현정 유노북스 편집자는 “4050대에 초점을 맞춰 기획한 책”이라며 “출판계 주요 독자가 3040대 여성이지만, 우리나라 4050대는 종이책과 가장 가까운 세대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독자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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