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피해 4개월 지났지만 아직 '복구 중'
비 새고 칼바람 스미는 냉골서 겨울 나야
보금자리 떠내려가도 당국은 "보상 불가"
“저짝(저쪽) 창문 틈새로 바람이 밤새 들어와 잠도 못 자.”
전국 대부분 지역에 올겨울 첫 한파경보가 발령된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 한영애(76)씨 집은 그야말로 ‘냉골’이었다. 말만 집이지 수은주가 영하 7도를 가리키는 바깥과 구분이 가지 않았다. 올 8월에는 폭우로 한쪽 벽까지 무너졌지만, 임시방편으로 덧댄 나무판자는 칼바람을 조금도 막아주지 못한다.
'장판 셀프 수리'가 월동 전부
구룡마을은 여전히 서울의 대표적 무허가 판자촌이다. 몇 해 전부터 개발 붐에 밀려 언젠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지만, 가난한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해마다 여름이면 수마(水磨), 겨울이면 강추위를 견뎌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강남구와 구룡마을주민자치회에 따르면, 구룡마을에 사는 673가구 중 기초생활수급자(117가구)와 차상위 계층(53가구)은 170가구나 된다.
올해는 특히 겨울나기가 버겁다. 여름 폭우 때 파손된 집을 수리하기도 전에 겨울이 성큼 다가와서다. 당시 구룡마을에서 400가구가 수해를 입었는데 20% 넘는 85가구가 아직도 복구를 마치지 못했다. 주민들은 “2구(연탄구멍 2개)짜리 연탄보일러가 한쪽만 작동해 추위에 덜덜 떨고 있다” “곰팡이 슨 벽지와 벽 틈새로 비바람이 샌다” 등 너도나도 고충을 털어놨다.
수해 복구 작업이 더딘 이유는 있다. 강남구청이 피해지원금과 집수리비로 건넨 돈은 가구당 최대 420만 원. 하지만 주민들은 치솟은 인건비와 재료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박상애(84)씨는 집 지붕이 다 망가져 방한용 천막을 설치해야 하는데, 인부 일당이 30만 원이라는 말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직접 주워 온 장판과 매트로 얼기설기 지붕을 메웠다. 박씨는 “바람이 살짝 불어도 장판이 죄다 날아가 하루에도 몇 번씩 아픈 다리를 이끌고 지붕을 오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조경일(83)씨 역시 “장판 깔고 무너진 벽을 수리하니 지원금이 금세 동났다”고 한숨을 쉬었다. 연탄보일러가 자리한 처마도 누수가 심하지만 큰 우산으로 덮어놓은 게 고작이다.
"무허가 주택은 피해 보상 없어"
구룡마을 집들은 무허가라 건축물이 아닌 ‘공작물’로 등록돼 있다. 그래서 재해 파손에 따른 보상금도 못 받는다. 축사 같은 공작물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시설로 분류돼 보상에서 제외된 탓이다. 원래 폭우 피해 가옥은 지자체 실사를 거쳐 침수(200만 원)→반파(800만 원)→완파(1,600만 원) 순으로 차등 보상된다. 구룡마을에도 반파ㆍ완파된 주택이 9가구 있다. 폭우로 집이 절반 넘게 망가진 주민 정모(80)씨는 “‘소나 돼지우리에 산다’는 이유로 보상해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사전이 이런데도 강남구 관계자는 2일 “침수피해 가구에 보상금과 수리비를 일괄 지급했다”면서 추가 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다.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주거빈곤층에 한해서라도 현실적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주거시설의 합법 여부를 떠나 주택 자체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취약계층의 기본권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구룡마을을 찾은 날 서울시는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 이주비ㆍ이사비 지원 내용이 담긴 ‘촘촘한 주거안전망 확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다수 주민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한 주민은 “개인 돈을 들여 집을 고치니 옮기라고 뒷북을 친다”면서 이사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다른 주민도 “시장이나 정권이 바뀌면 또 엎어질 공약(空約) 아니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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