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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할 것 같고 흥할 것 같은 돈나무

입력
2022.12.05 04:2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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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부 해안에 자라는 대표 식물, 돈나무
남쪽의 돈나무가 전국에 식재될 날을 기다리며

편집자주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돈나무 꽃은 봄에 하얗게 핀다. 하얗게 핀 꽃은 시간이 지나면 노르스름해진다. 이하 사진은 허태임 작가 제공

돈나무 꽃은 봄에 하얗게 핀다. 하얗게 핀 꽃은 시간이 지나면 노르스름해진다. 이하 사진은 허태임 작가 제공

개업식이나 집들이 축하 선물로 안고 가는 화분 중에 ‘금전수’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있다. 천남성과에 속하며 케냐가 고향인 그 식물을 서양에서는 학명(Zamioculcas zamiifolia)의 앞 두 글자를 따서 ‘지지플랜트(ZZplant)’라고 부른다. 일찍이 중국에서부터 금전수라고 불렀는데 우리 원예업계에서도 그것을 따라 부르게 되었다. 도톰한 잎 한 장 한 장이 마치 고대의 조개 화폐를 닮았고 이파리 홑잎이 고르게 배열되어 이룬 겹잎이 그 화폐를 한 냥 한 냥 엮은 듯해서 붙은 이름이다. 살림살이에 돈이 많이 모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서 금전수 화분 하나를 앞에 놓고도 우리는 은근히 ‘대박’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 토종식물 중에는 아예 대놓고 ‘돈’이 이름 그 자체인 나무가 있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남부지방 해안가에 자라는 돈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별명이나 유통명이 아니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제안하는 정식 이름이 돈나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일본과 대만과 중국 남부지방에 자라는 동아시아의 난대식물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이 이국적인 아시아 식물을 금전수만큼이나 아껴 기른다.

돈나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 사이에 열매가 익는다. 노란색 껍질이 벌어지면 붉은 씨앗이 나오는데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덮여 있다.

돈나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 사이에 열매가 익는다. 노란색 껍질이 벌어지면 붉은 씨앗이 나오는데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덮여 있다.

돈나무의 원래 이름은 똥나무였다. 똥나무라는 고약한 이름이 어쩌다 보니 반전을 일으켜서 지금의 이름 돈나무가 되었다. 식물학자들은 꽃과 열매에 파리가 많이 꼬인다고 해서 ‘똥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수긍이 가서 주억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아니, 돈나무 말고도 숱한 식물들이 갖은 수를 써서 곤충을 불러 모으지 않던가? 무엇보다 우리 식물 이름은 한자식 표기에서 온 경우가 많은데 돈나무의 한자 이름이 해동(海桐) 아니던가? 목재의 성정이 오동나무와 비슷하고 바닷가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갯동나무가 개똥나무로 바뀌었다가 똥나무가 되고, 그리하여 지금의 돈나무라는 이름에 이르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돈나무를 처음 한글로 기록한 <조선식물향명집>은 똥나무가 아니라 ‘섬음나무’라고 적었다. 음나무는 인삼과 같은 혈통의 두릅나무과 식물로 사포닌이 많아서 약재로 널리 쓴다. 돈나무 역시 사포닌이 풍부해서 예로부터 섬사람들은 그 효능을 훤히 알고 있었다. 책을 편찬한 조선박물연구회가 섬음나무라고 기록한 이유를 나는 그렇게 짐작한다.

열매에서 훅하고 끼치는 특유의 쾨쾨한 냄새를 고약한 똥내라고 여기저기서 표현하는 것이 돈나무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것 같다. 왜냐하면 돈나무는 꽃향기가 좋아도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내가 그 향기를 처음 맡았을 때 몇 그루의 나무가 모여 사는 숲 냄새가 났다. 오렌지나무와 사이프러스와 편백나무와 라일락이 회동한다면 아마 그 비슷한 향기가 날 거다. 실제로 돈나무 꽃향기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보면 그 식물들 몸에 든 대표 정유성분이 나열되어 있다.

일본에서 판매하는 무늬돈나무. 자연에서 자라는 돈나무 중에 잎에 무늬가 진 변이개체를 선별하여 품종으로 개량한 것이다. 이 식물을 판매하고 있는 일본 사이트(jp.pinkoi.com)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일본에서 판매하는 무늬돈나무. 자연에서 자라는 돈나무 중에 잎에 무늬가 진 변이개체를 선별하여 품종으로 개량한 것이다. 이 식물을 판매하고 있는 일본 사이트(jp.pinkoi.com)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돈나무 덕분에 정말 유명해진 포토존이 제주도 도두봉에 있다. 제주에 가면 내가 즐겨 가는 오름 가운데 하나가 도두봉이다. 솔잎미나리, 양장구채, 냄새냉이처럼 해류를 타고 도착한 낯선 외국식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드물게 자라는 자생식물인 개구리갓과 큰각시취도 볼 수 있어서다. 그 봉우리에 ‘키세스나무’가 있다. 돈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모습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흡사 키세스초콜릿(또는 머랭쿠키)을 닮았고 나무 뒤로 펼쳐지는 바다와 하늘이 너무 근사한 곳이다. 이렇듯 도두봉은 한 나무 덕분에 명소가 되었다. 지금도 사진을 찍기 위해 그 돈나무 앞으로 긴 행렬이 줄을 서 있을 것이다.

금전수만큼이나 널리 키우는 반려식물이 무늬돈나무다. 일본에서 변이개체를 품종으로 개량한 나무다. 자연에서 돈나무가 무늬를 갖는 이유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교적 온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돈나무가 저온에 노출되면 체내 다중불포화지방산을 높이는 방식으로 영양분 손실을 막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엽록체 발달 장애가 일어나 결과적으로 잎 표면에 어룽어룽한 점이나 무늬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서부 섬마을이나 해안에 빠지지 않고 자라는 대표 식물이 돈나무다. 그 섬에 들어가면 무늬가 들어간 돈나무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일본이 아닌 우리 섬마을에서 키운 돈나무를 묘목으로 사서 키운다면 정말 돈나무가 돈이 되는 호시절이 올 것도 같다. 지구가 점차 따뜻해지고 있으니까 가까운 미래에는 돈나무가 생장할 수 있는 영토 또한 한반도 내륙까지 점차 넓어질 것이다. 남쪽의 돈나무가 전국의 꽃밭 곳곳에 식재되어 우리에게 상서로운 기운을 전하는 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허태임의 초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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