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중국 국가원수 중 처음 방한
김대중 대통령과 한중 관계 '격상' 합의
30일 사망한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의 인연은 깊다. 그의 재임 기간 한중 관계는 한층 깊어졌고, 1995년 중국 국가원수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경제 발전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탄복한 그는 중국으로 돌아가 성장 정책에 더욱 매진했다.
장쩌민 집권 1년 전인 1992년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었다. 그는 취임 3년 차인 1995년 11월 한국을 방문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에 오기 직전 베이징에서 한국특파원단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경제 협력 강화에 열의를 보였다. 당시 그는 "(중국의 경제개발계획과 관련해) 한국 기업들이 기획를 잡아 경제 협력에 공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가 2006년 장쩌민 전 주석의 80세 생일을 앞두고 출간한 ‘장쩌민 방문 외교 실록’에 따르면, 그는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수행원들에게 “한국은 나라도 작고 인구도 많고 자원도 없지만 30년의 짧은 세월 동안 이 같은 수준까지 발전한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쩌민 전 주석은 '한강의 기적'을 벤치마킹하고 싶어했다. 장남인 장미엔헝은 2002년 중국과학기술원 부원장 자격으로 방한해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을 만나 조언을 들었다. 경북 구미의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라인, 경기 기흥의 반도체 생산라인도 견학했다. 중국과학기술원은 정보ㆍ과학 정책을 국가주석에게 자문하는 기구였다.
서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한중 관계가 호혜 평등과 상호 보완 속에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한 이후 한중 관계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1998년 1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은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경제, 통상뿐 아니라 정치, 안보, 문화 등으로 협력 분야를 넓히자는 취지였다.
장쩌민 전 주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했다. 사석에서 김 전 대통령을 '따거(大哥·큰형님)'라고 부르면서 존경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통령이 북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가입 압력을 거부하는 등 중립 외교를 펼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장쩌민 집권기에 한중 관계는 부침도 겪었다. 2000년 한국이 농가 보호를 위해 중국산 마늘에 높은 관세를 매기자 그는 삼성전자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 중단으로 보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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