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문신 살인청부업자(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나 당구장 도박꾼(영화 ‘타짜: 신의 손’) 또는 취한 아저씨(영화 ‘플랜맨’) 등을 연기했다. “가만히 있으면 무서운 얼굴”이니 악역이 주로 주어졌다. 순경1(영화 ‘장수상회’)이나 마 형사(‘탐정: 더 비기닝’) 같은 역할을 해도 이름은 없었다. 보조출연자로 화면에 얼굴을 비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배우 윤경호(42)는 서른 중반을 넘어서야 두각을 나타냈다. 영화 ‘완벽한 타인’(2018)에서 동성애자 영배를 연기하며 첫 주연을 맡았다. ‘정직한 후보’ 시리즈 등으로 관객을 웃기며 친숙한 얼굴이 됐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탄생’에서는 천주교 성인 현석문(1799~1846)을 연기했다. 섬뜩한 면모를 보이다 폭소를 안기더니 성스러운 역할까지 맡게 됐다. 파란만장 연기 인생이라 할 만하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를 찾은 윤경호를 만났다.
‘탄생’은 국내 첫 천주교 신부가 된 김대건(1821~1846ㆍ윤시윤)의 삶을 이야기 기둥으로 삼는다. 신부가 되기 위해 10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했던 김대건의 신념 어린 삶이 펼쳐진다. 격동기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선각자의 면모를 부각시킨 점이 인상적이다.
윤경호가 맡은 현석문은 김대건의 주요 조력자로 당시 조선 천주교의 지도자급 인물이었다. 기해박해(1839) 순교를 기록한 ‘기해일기’의 작성자이기도 하다. 윤경호는 “박흥식 감독님이 마지막까지 캐스팅을 고심하신 역할로 알고 있다”며 “일정이 여의치 않았으나 출연 제의를 받고선 운명적인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 성당 교리 공부할 때 감명 깊게 본 ‘미션’(1986) 같은 영화가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었고, 그런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윤경호는 냉담자다. 천주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양동근(43) 선배를 보며 배우 꿈을 꿨던” 그에게 연기의 뿌리다. “성당 성극으로 중학교 때 처음 연기를 하며 연기의 맛을 느꼈고, 당시 지도 선생님 덕분에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윤경호는 영화 출연 전까진 “부끄럽지만 현석문을 잘 몰랐다”. 그는 “박해로 아내와 자식들이 다 옥사한 후 인고의 시간을 버티며 순교 기록을 남긴 현석문의 삶에 너무 감명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옥사하면 저는 정말 못살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윤경호는 7세 딸과 4세 아들을 두고 있다.
윤경호는 여러 모습 중 코믹 연기가 유난히 눈에 띈다. ‘탄생’에서도 현석문의 언행을 통해 관객을 미소 짓게 한다. 윤경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함과 묵직함, 담백함으로 현석문을 채울 생각”이었으나 “박 감독님이 웃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는 “영화의 본질을 해칠까 봐 수위 조절하며 걱정을 좀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윤경호가 코미디에 딱히 자신이 있는 배우는 아니다. “감독님들이 재미있어 보이는 제 면모를 발견해 준 게 고마울” 정도다. 그는 “인상 때문에 오해받을 때가 많다”며 “코미디 장르는 참 어렵지만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호감을 줄 수 있어 꾸준히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야인시대’에서 단역으로 카메라 앞에 선 지 20년. 윤경호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명으로 지냈다. “누군가의 삶을 잠시 살아보는 게 너무 매력적이어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역할이든 누구보다 더 사실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도 했다. 9년 연애 후 결혼한 아내가 “잘한다고 항상 응원해준 점”이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첫째가 태어난 후 상황은 달라졌다. 윤경호는 “무대에서 햄릿같이 근사한 역만 쫓았는데 돈이 되면 어떤 연기든 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돌아봤다. 생각을 바꾸니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그는 “좋은 배역이 더 들어오고 오디션을 통과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윤경호는 배우로서 자신의 최고 무기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대학로 연극하러 다닐 때 지하철 승객 보며 공부를 많이 했던 듯해요. 사람들 각자 모습에서 사연을 생각하고 그들의 삶에 하나씩 공감을 했어요. 그 순간들이 문득 제 몸속에 캐릭터들을 만든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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