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 기념식 '늑대가 나타났다' 공연 취소
"곡 못 바꾼다 하니 연락 없어... 명백한 검열"
연출 강상우 "대통령 올 수 있다고 말한 이후 태도 바뀌어"
지난 10월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자신의 곡 '늑대가 나타났다'를 공연하려다 행정안전부가 곡을 문제 삼아 출연이 무산된 음악가 이랑은 이 사건을 두고 "명백한 검열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이랑은 행사 주최자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측에 "곡 변경의 이유에 대해서 재차 물어봤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면서 "어쨌든 저의 상황에서는 공연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곡 변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고 재단에서 이에 대한 답변을 달라고 했더니, 답변도 없이 그냥 기념식이 치러졌다"고 말했다.
이랑이 곡 변경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이유는 애초에 8월 6일 최초 섭외 때부터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는 것으로 결정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행사의 총연출을 담당했던 강상우 감독이 제안했고 재단도 '늑대가 나타났다'를 공연하도록 수용한 사안이었다. 이랑뿐 아니라 세션을 맡은 전체 밴드가 부마항쟁 기념식에서 공연이 열린다고 여기고 연습을 진행했고 일정도 따로 빼놓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 측이 돌연히 공연 3주 전인 9월 24일 기성곡을 부를 것을 권한 것이다. 이랑은 "처음에는 곡의 취지가 행사와 잘 맞고 칭찬해 주는 것 같아서 이 노래를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 노래가 없어져야 된다고 하니까 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고 말했다.
"늑대, VIP 아냐... 일어선 약자들을 성 안에서 늑대라 부르는 것"
이랑은 스스로를 민중가수로 지칭했다. '늑대가 나타났다' 역시 "민중가요로 만든 노래"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인이 되니까 자꾸 화가 나서 여러 가지 집회도 나가보고 했는데, 집회에서 공연을 하는 가수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하나 갖고 싶다. 다 같이 부르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해서 만든 노래)"라고 말했다.
검열 사건 이후 '늑대가 나타났다'의 '늑대'를 집권 세력으로 읽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오독이다. 노랫말에서 '늑대'는 오히려 저항하는 약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더 정확히는 집권 엘리트층이 저항하는 약자들을 '불법 폭력 집단' 등으로 몰아세우는 양상을 양치기가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이랑은 '늑대가 나타났다'를 "배고프고 그냥 일하고 노동하고 예의 바른 시민들이 저처럼 배고픔과 어떤 분노의 게이지가 차올라서 성을 향해 이렇게 집결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또 "그 사람들이 외치는 게 배고프다는 말들인데 그 말들을 들은 성 안쪽의 사람들이 늑대가 나타났다, 폭도가 나타났다, 이렇게 사람의 말이 아닌 것처럼 치부해 버리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랑은 보도 이후에도 행안부나 재단에서 연락해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재단이나 행안부나 용역업체나 아무도 저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어떻게 하겠다고 해결책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대답하고 있지 않으면 저도 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랑은 당초 지급이 약속된 가수 공연비 700만 원도 정산받지 못했다.
강상우 감독 "VIP 온다는 말 이후 분위기 바뀌어"
'늑대가 나타났다' 검열 사건에 대한 행안부의 입장은 "검열은 없었다"이다. "미래세대와 부마항쟁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 달라는 의견을 재단에 전달한 바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문화계에선 "검열을 사실상 실토한 셈"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해당 무대의 총연출을 맡았고 이랑의 공연을 제안한 강상우 감독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곡 변경 사태가 발생한 원인을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 기념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언 이후 행안부와 재단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강 감독은 "VIP(대통령)가 행사에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그 뒤로 주무관 선에서 승인된 내용을 사무관들이 세세하게 검토했고, 해당 노래를 문제 삼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단 측이 "(VIP가 참석할지도 모르니) 무조건 무색무취, 그분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걸 우선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당일 행사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참석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은 2019년 40주년 때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20년엔 정세균, 2021년엔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가 참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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