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상속다툼에서 기여분, 특별수익의 의미

입력
2022.11.25 04:40
25면
0 0
소제인
소제인변호사

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상속재산분할 협의를 하다가 지쳐버린 의뢰인이 며칠 전 찾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낡은 주택 한 채가 있는데, 재개발사업 구역으로 지정되어 10억 원 넘는 이익이 예상되자 해외로 이민 가 연락도 잘 안 되던 큰누나까지 귀국해 변호사를 선임했다며,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우울증 약을 복용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의뢰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형제·자매가 몇 명인지, 아버지 생전에 특별히 재산을 증여받은 사람이 있는지, 재산의 가액이 얼마였는지, 의뢰인이 특별히 아버지를 부양하거나 병간호한 사실이 있는지, 다른 형제·자매들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의뢰인은 2남 3녀 중 막내아들이었다. 큰형은 30년 전 사업자금으로 3억 원을 받았고, 누나들도 결혼자금으로 1억 원 이상씩 받았다. 아버지는 이후 사업이 기울면서 병환을 얻었고, 의뢰인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결혼도 못 하고 아버지와 살며 20년간 단독으로 부양했고, 병원을 모시고 다녔다. 형, 누나들은 연락이 잘 안 됐고, 작은누나만 가끔 병수발을 도와주고 병원비와 생활비를 보탰다.

그동안 아버지의 낡은 주택은 당연히 막내 것이라고 모두 생각했다. 아무도 욕심내지 않았고 욕심낼 만한 재산도 아니었다. 그런데 재개발이 된다고 하자 모두들 달려들어 '아버지를 부양하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인데, 유일한 상속재산을 막내가 다 갖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공평하게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뢰인은 재산 싸움보다는 형, 누나들에게 인간적인 환멸을 느껴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의뢰인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법원에 상속재산분할 심판을 청구할 생각을 하고, 절대 민망해하지 말고, 위에서 정리한 쟁점에 대한 증거를 꼼꼼하게 준비할 것. 특히, 20년간 급여를 받아 아버지를 부양한 통장내역과 병원비 영수증, 진료기록을 준비할 것." 재판은 결국 증거 싸움이고, 이 사건에서 진짜 공평한 것은 모든 자식이 똑같이 재산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민법 제1008조의 2는 '기여분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공동 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는 경우 상속분 산정에 그러한 부양이나 기여를 고려하여 공동 상속인 간의 실질적 평등을 도모하려는 제도이다.

또한, 민법 1008조는 '특별수익자의 상속분'을 규정하고 있다. 공동 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자가 있는 경우 이를 상속분의 선급(先給), 즉 상속재산을 미리 받은 것으로 보아 상속분 산정에 참작하는 것이다. 이를 참작하지 않으면 상속인 사이에 불공평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상속재산분할은 계산의 공식이 있다. '상속재산+특별수익-기여분'을 법정상속분으로 나누는 것이다. 위 사례에 대입하면, 막내아들은 형과 누나들이 받았던 사업자금과 결혼자금을 '특별수익'으로 주장·입증하고, 아버지를 특별히 부양한 자신의 기여도를 '기여분'으로 주장·입증하여 상속재산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상속인들에게도 각자의 사정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소송이 진행되면 예상치 못한 사연이 불쑥 튀어나올 수도 있다. 상속 사건에서는 가족의 수십 년 역사와 갈등, 말하지 못했던 해묵은 앙금과 오해들이 드러나는데, 그 가족 안에서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한 그 누구도 쉽게 재단할 수는 없는 내용이다.

의뢰인이 돌아간 후 상담 내용을 정리하며, 그래도 재판으로는 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동 상속인 간에 허심탄회하게 오해와 앙금을 풀고, 특별수익과 기여분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여 협의로 끝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속재산분할 협의가 가족 대화합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것이 돌아가신 분이 진정 바라는 바가 아닐까.

소제인 법무법인 (유)세한 파트너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