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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축구팀, 시위대 지지했다? 정작 이란 시민 반응 싸늘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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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축구팀, 시위대 지지했다? 정작 이란 시민 반응 싸늘한 까닭은

입력
2022.11.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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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경기서 국가 연주 때 침묵한 이란 대표팀
앞서 대통령 예방… 시위대 "폭도" 비난한 선수도
"선수들 진실성 없어... 이란 학살의 진실 말해야"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 21일 카타르 도하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대기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 21일 카타르 도하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대기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 21일(현지시간) 열린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잉글랜드와의 경기에 앞서 국가 연주 때 국가를 따라부르는 대신 침묵을 지켰다. 이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끌려가 사망한 이후 이란을 뒤덮은 '반히잡 시위'에 연대하고 정부의 폭력적 진압에 반발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해외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이란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대표팀이 월드컵 참가 계기로 이란의 상황을 알리는 행보라며 반기는 팬들도 있지만, 시위대를 비판하고 정부를 옹호하는 등의 언행을 보인 선수와 축구협회 때문에 국가대표팀에 실망해 아예 외면하기로 마음먹은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팀 주장의 시위대 연대 발언, 진실하지 않다"

카를로스 케이로스(왼쪽)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주장 에산 하지사피가 20일 카타르 도하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도하=로이터 연합뉴스

카를로스 케이로스(왼쪽)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주장 에산 하지사피가 20일 카타르 도하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도하=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2일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한 이란 출신 한국 유학생 아이사씨가 후자의 사례다. 그는 "카타르의 사회 문제 정책과 이란 대표팀을 응원하지 않아 월드컵을 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 국가대표팀 주장의 시위대 연대 발언, 선수들의 경기 전 침묵 등에 대해서도 "진실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앞서 잉글랜드와 경기를 앞두고 이란 국가대표팀 주장 에산 하지사피는 "조국의 상황이 옳지 않으며, 이란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이란의 모든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아이사씨는 이에 대해 "여전히 정부와의 관계를 보호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들렸다"면서 "정부가 이란 사람들을 죽이는 정부라는 것을 언급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왜 대통령을 만나 돈(후원금)을 받았는지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이사씨는 "축구팀이 시민들의 반발을 보고 (뒤늦게) 필사적으로 응원하는 척하고 있다"면서 "이미 늦었지만 대표팀은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상황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의 진실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침묵 속 "여성의 머리 위해 국대 자격도 내놓을 수 있어" 소신 밝힌 선수도

지난 9월 27일 오스트리아 뫼틀링에서 열린 이란과 세네갈의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를 앞두고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 9월 27일 오스트리아 뫼틀링에서 열린 이란과 세네갈의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를 앞두고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는 모습. AFP 연합뉴스

이란 독립언론과 서구 언론의 보도를 보면, 실제로 월드컵을 앞두고 이란 대표팀의 행적이 논란이 되면서 시민들 가운데 일부는 배신감을 느끼고 응원을 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 대표팀은 월드컵에 나서기 전 지난 15일 이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예방했는데, 이 자리에서 선수들이 보인 태도가 논란이 됐다. 2015년부터 주전 골키퍼로 활동한 알리레자 베이란반드는 "이 자리에 있게 돼 기쁘다. 초대해 주셔서 영광"이라고 말했고, 바히드 아미리는 "우리를 계속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아미리는 앞서 반정부 시위대를 '폭도'로 지칭하고 경찰의 진압에 감사하다고 밝힌 선수다.

개별 선수뿐 아니라 국가대표팀 전체적으로도 지난 9월 24일 우루과이와의 친선경기에서 승리한 이후 대대적인 자축 파티를 열고, 베이란반드의 30세 생일을 축하했다며 "무신경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란 대표팀은 3일 뒤인 27일 세네갈과의 친선경기에는 국가 연주 때 검은 패딩 재킷을 입어 아미니를 비롯한 사망자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더 나아가 시위대를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밝힌 선수도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고 2014년부터 이란 국가대표로 활약해 온 사르다르 아즈문이다. 그는 지난 9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최악의 경우 국가대표에서 쫓겨날 것이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이란 여성들의 머리카락 하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즈문은 나중에 해당 포스팅을 지우고 표현을 완화해 다시 올렸다.

오랫동안 이란 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왔고 이번 월드컵에 앞서 감독으로 전격 복귀한 포르투갈 출신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언행에도 시선은 엇갈린다. 케이로스 감독은 시위대 지지 입장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표명한 아즈문을 대표팀에서 탈락시키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최종 국가대표팀 명단에 넣었다. 또 출정 기자회견에서는 "선수들은 규정을 어기지 않는 한 각자의 의사표현을 할 권리가 있다"고 옹호했다. 하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나라의 감독이 된 게 자랑스럽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 질문에 답하면 얼마를 주겠느냐"고 응수하기도 했다.

이란 축구 전설 "대표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라"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로 뛰었던 알리 카리미.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로 뛰었던 알리 카리미.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처럼 애매한 이란 선수단의 입장에 동정적인 의견도 없지는 않다. 독립언론 이란와이어는 "이란에서 축구는 오랫동안 정치화해 왔으며, 선수들은 스포츠와 무관한 모든 문제에 관해 정권의 노선을 따르거나 최소한 침묵을 지킬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경우에도 시위대를 적극 지지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에 '사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한다'는 수준의 메시지밖에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미 은퇴한 이란 축구 전설들은 시위대의 편에 섰다. 이란 역대 최고 미드필더로 손꼽히는 알리 카리미는 시위대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지난 13일에 정부 관계자 입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는 선수는 대표팀에 설 자격이 없다"는 발언이 나오자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선수단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리미는 현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머물고 있다.

109골로 2021년까지 A매치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전설적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는 "카타르 월드컵 초청을 거절했다"면서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며 고국에 있는 모든 이들의 곁에 있겠다"고 밝혔다. 프로축구팀 페르세폴리스 FC의 감독을 맡고 있는 야흐야 골모함마디는 라이시 대통령을 만난 대표팀을 향해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당국에 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가 이란 검찰의 소환 대상이 됐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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