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테 샬라메, 루카 과다니노 감독 5년 만에 협업
처연하고도 소름 끼친다. 함께할 수 없는 감정들이 스크린을 떠돈다. 눈을 감고 싶으나 외면할 수 없는 극소수자의 고독과 사랑이 마음을 흔든다. ‘본즈 앤 올’은 공포와 로맨스, 성장극을 품은 영화다. 모순된 정서들이 깃들어 있는 만큼 어느 장르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다.
10대 후반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이 스크린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매런은 아버지와 허름한 트레일러에 살고 있다. 매런은 남들과 다른 본능을 지녔다. 그런 매런을 아버지는 두려워한다. 매런이 18세가 되자마자 아버지는 매런의 출생증명서, 약간의 돈,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오랜 의무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하게. 매런은 출생증명서를 바탕으로 생모를 찾아 나선다. 메릴랜드주에서 시작한 여정은 오하이오주와 인디애나주, 미주리주, 아이오와주를 거쳐 미네소타주에 이른다. 매런은 도중에 자신과 똑같은 본능을 지닌 ‘동족’을 몇몇 만난다.
영화는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띤다. 매런이 자신과 비슷한 연배에 식성이 같은 리(티모테 샬라메)와 동행하며 겪는 일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매런은 여행길에서 세상을 배운다.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깨닫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뇌하기도 한다. 리와 농밀한 감정을 나누며 사랑의 설렘을 경험하기도 한다.
슬프고도 무섭고 아련한 감정이 교차하는데 스크린을 지배하는 정서는 고독이다. 영화를 여는 장면부터가 쓸쓸하다. 텅 빈 들판에 선 송전탑을 담아낸 유화들이 잇달아 보인다. 매런이 리와 함께 차로 이동할 때 보이는 풍광이 인물들의 외로운 내면을 반영한다. 퇴락한 집들,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이 태양 아래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매런과 리가 함께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고립된 평원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질 때다. 보통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본능을 가진 존재로서의 태생적 고독이 비애를 끌어낸다.
섬뜩한 장면들이 많다. 희한하게도 공포는 매런과 리의 동족에게서 비롯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될 때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여느 공포 영화와 달리 모두가 경계할 만한 매런과 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관객은 손을 움켜쥐게 된다. 극소수자 매런과 리에게 연민을 갖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청춘 스타 티모테 샬라메와 이탈리아 감독 루카 과다니노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이후 5년 만에 협업한 영화라 화제를 모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애틋하고도 순정한 사랑을 기대하는 이들은 좀 실망할 수 있다. 처절한 사랑은 있으나 애절함의 강도는 약하다. 과다니노 감독의 전작들 중 ‘아임 엠 러브’(2009)나 ‘비거 스플래시’(2015)보다 ‘서스페리아’(2018)에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 과다니노 감독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이야기는 생장의 계절 여름에 펼쳐진다. 과다니노 감독 전작 속 인물들처럼 매런은 여름을 거치며 이전과 다른 삶을 맞이하게 된다. 내년 3월 열릴 제95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 주요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3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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