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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으니 수사한다는 거짓말

입력
2022.11.21 04:30
수정
2022.11.21 06: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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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모습. 뉴시스

서울중앙지검 모습. 뉴시스

검찰총장을 지낸 원로 법조인은 현직 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나라만큼 정치인과 대기업 수사를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며 걱정했다. 그러면서 검찰 조직에 뿌리내린 ‘특수수사 지상주의’를 되돌아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역대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 중에 서초동 포토라인을 지나지 않은 사람은 손에 꼽기 힘들다. 대기업 총수도 마찬가지다. 10대 그룹은 물론이고 30대 그룹으로 넓혀도 압수수색을 받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다. 검찰이 연례 행사처럼 수시로 칼을 휘두르다 보니, 한국 정치인과 기업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정치인과 기업인이 유독 비리가 많은 걸까. 다른 나라 검찰도 이들을 상대로 이렇게 독하게 수사를 하고 있는 걸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미국과 유럽, 일본 기자들에게 한국 검찰의 활약상을 전하면 대부분 깜짝 놀란다. 적어도 자기들 나라에선 이 정도로 수사하진 않는다고 한다.

검찰 수사의 원동력은 정치권과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다. 이는 검사들이 필요 이상으로 힘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과잉수사와 선택적 수사를 한다고 지적하면 “그럼 잘못했는데 수사를 안 하느냐”는 말로 간단히 제압해 버린다. 심지어 “당신은 비리를 옹호하는 것이냐” “그쪽과 연결된 것 아니냐”는 말까지 곁들인다. 검찰 수사는 모두 그런 식으로 합리화된다.

하지만 잘못했으니 수사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깨끗하게 살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틀린 말이다. 그것은 검찰의 언어다. 모든 사람은 깨끗하지 않으며, 작은 오점 하나 없이 깨끗하게 살 수도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를 한다. 그걸 들춰내서 처벌했다고 검찰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왜 야당만 수사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의 외침은 의미 없는 메아리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검찰은 국민의힘 인사들도 수사하고 있다. 내년에는 아마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는 국민의힘에서 검찰을 공격할 것이다. ‘야당을 수사했으니, 여당도 수사하라.’ 그것은 검찰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다. 누구를 수사해도 비난받지 않으며, 부패한 정치인과 정의로운 검찰 프레임을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민주당 인사들을 겨냥한 동시다발적 수사에 일선 검사들이 대거 차출됐다. 수사가 길어지다 보니 검찰청에 남아 있는 형사부 검사들의 아우성이 십리 밖에서도 들린다. 가뜩이나 미제사건이 쌓여가는데, 두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혼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인력을 어디에 투입하는지를 보면, 조직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 알 수 있다. 검찰이 정치권과 대기업 수사를 최우선 과제로 두는 한, 민생과 직결된 범죄와 내부비리는 눈감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대기업 수사에 매진하는 열정으로 전국의 특수부 검사들을 차출해 형사부에 파견했다면 민생범죄 해결과 미제사건 처리에서 혁혁한 성과를 냈을 것이다. 검사 비리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력을 총동원했다면 매년 검사 10명씩은 법정에 세웠을 것이다.

잘못했으면 수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잘못했어도 수사받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훨씬 많다. 누구를 수사할지는 검찰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재 무엇을 수사하고 있는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 검찰에 필요한 말이다.

강철원 사회부장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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