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가구 브랜드 '프리츠한센' 150주년 기념전
한국 공예 장인·디자이너와 협업 작품 선보여
감청색 라운지 체어는 한국의 가을 하늘을 닮았다. 둥근 표면을 따라 조각보처럼 자르고 이어 붙여 의자를 감싸고 있는 것은 흔히 말하는 '쪽빛' 천이다. 고려시대부터 '천년의 빛깔'이라고 불렸던 한국 고유의 푸른색이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걸작 '에그(Egg) 체어'에 입혀진 것. 국가무형문화재 정관채 염색장이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리츠한센'의 의자를 염색한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 작품이다.
현대 북유럽 디자인을 이끈 가구 브랜드 프리츠한센의 150년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프리츠한센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다음 달 11일까지 서울 문화역서울284에서 창립 150주년 기념전 '영원한 아름다움'을 개최한다. 앞서 덴마크와 일본에서 열린 전시와 달리 한국 전시에서는 이 브랜드의 역사적 컬렉션뿐 아니라 한국 장인, 디자이너와 협업한 작업을 두루 볼 수 있다.
1872년 설립된 프리츠한센은 원래는 덴마크의 남쪽 도시 낙스코우(Nakskov)에서 캐비닛를 만드는 회사였다. 창업자 프리츠한센이 코펜하겐 무역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가구 회사를 본격 시작했고, 이후 외부 디자이너나 건축가와 협업을 이어가며 에그(Egg), 스완(Swan), 앤트(Ant) 체어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구를 선보이며 명품 가구 회사의 반열에 올랐다.
전시장 입구인 중앙홀에는 1918년 덴마크 의회에 납품한 의자를 포함해 한스 J. 웨그너가 디자인한 의자 '하트', 아르네 야콥센이 1955년 문케가드 학교를 위해 만든 '모기(Mosquito)' 의자, 베르네 판톤의 1974년 '시스템 1.2.3' 등 150년 동안 이어지고 변주된 브랜드의 아이콘이 총출동했다. 3층 대합실에선 덴마크 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빈티지 제품과 카달로그 원본을 아카이브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전시의 일부인 '코리아 프로젝트'다. 무형문화재 장인 4명과 현대 디자이너 3명이 참여해 이 브랜드의 디자인을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프리츠한센에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것이 외부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협업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
실제 이번 코리아프로젝트에서는 쪽빛 에그체어를 비롯해 프리츠한센의 유산에 한국의 미를 접목한 특별한 작품이 여럿 나왔다. 정수화 칠장은 흑칠을 한 뒤 조개껍데기를 붙이는 나전칠기 기법과 옻칠로 릴리, 그랑프리, 앤트 의자를 장식했다. 서신정 채상장은 대나무 껍질을 기하학적 패턴으로 엮어 폴 케홀름의 디자인인 PK24 셰즈롱그(등반이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뻗을 수 있게 한 의자)와 PK65 탁상을 꾸몄다. 채상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에 색을 물들여 무늬를 엮는 공예 기법이다. 최정인 자수장은 스완 체어에 자수로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새겨 넣었다. 초충도에 등장하는 가지, 쇠뜨기풀, 방아깨비는 다산을 뜻하고 벌과 개미는 우애를, 나비는 장수를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디자이너들은 한국 디자이너가 없는 프리츠한센에 새로운 오브제를 제안했다. 스튜디오언라벨의 르동일은 조명을, 밀리언로지즈의 최형문은 화병을, SWNA의 이석우는 테이블 트레이를 각각 제안하며 개성있는 미감을 선보였다. 김태훈 공진원 원장은 "한국의 공예·디자인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북유럽 디자인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며 "이번 전시가 한국 공예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과 디자이너들의 의미 있는 작업을 전 세계에 선보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관람료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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