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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냄새...잘 살 수 있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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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냄새...잘 살 수 있는 조건"

입력
2022.11.21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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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 신간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허무는 영혼의 피냄새" 산책, 디저트.. 순간에 집중해야
정치적 허무함에는? "너무 몰두하지 않기를"

신간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펴낸 김영민 서울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간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펴낸 김영민 서울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책은 허무로 시작해 산책으로 끝난다. “잘 사는 사람은 허무를 다스리며 산책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삶을 원한다. 산책보다 더 나은 게 있는 삶은 사양하겠다.” 이질적인 두 단어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건 글쓴이가 김영민 서울대 교수라서다. 깊은 사유로 독자들을 매료시킨 김 교수가 책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했다.

전화로 만난 김 교수는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삶을 잘 살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무의미한 성공, 곧 사라질 욕망, 남들이 하기에 나도 해야 한다는 불안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산책하듯 살자는 다독임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목표를 따르지 않고 순간을 즐기자는 속삭임이다. 그 위로에 공명한 듯 책은 출간 후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김 교수가 책에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냄새”라고 쓸 만큼 인생의 허무는 동서고금의 화두였다. 조선 시대 문인 홍세태(1653~1725)는 배 위에서 술과 경치를 즐긴 다음 “잘 놀고 흐뭇했어도, 일이 지나고 보면 문득 슬프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이 소장한 무도가(舞蹈歌) 필사본에는 “우리는 서둘러 죽음을 맞이하러 가네. 더 이상 죄를 범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써 있다.

하필 정글 같은 한국 사회에 태어나, 허무를 느낄 가능성은 더 크다. 김 교수는 통화에서 “한국 사회는 여러 목적과 동원이 과도한 사회라는 인상이 든다. 가령 대학 입시 같은 것이다. 성취를 해도 문제고, 못 해도 패배감에 시달린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삶을 돌보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본 영화 '쉘위댄스'의 한 장면. 춤에 빠진 직장인 스기야마가 동료와 함께 시도 때도 없이 춤 연습을 하고 있다.

일본 영화 '쉘위댄스'의 한 장면. 춤에 빠진 직장인 스기야마가 동료와 함께 시도 때도 없이 춤 연습을 하고 있다.

삶을 돌보는 방법은 현재를 온전히 즐기는 것이다. 영화 ‘쉘위댄스’(2000)의 주인공 스기야마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푸는 게 우선이다. 파트너와 합을 맞추듯 인생에서 맞닥뜨린 상황을 부드럽게 대처해 보자. 아울러 달콤한 디저트와 산책하기. “이런 것들은 적어도 그 순간에 집중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살고 있는 순간으로 잠깐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치유의 효과를 가진 활동이다.”

충분히 탐닉하되 ‘마음의 중심’은 지켜야 한다. 춤을 추되 정신줄은 잡고 있자는 얘기다. 이성을 잃고 게걸스럽게 디저트를 흡입해서도 안 된다. “인생을 즐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환멸을 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에 파묻히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ㆍ김영민 지음ㆍ사회평론ㆍ308쪽ㆍ1만6,000원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ㆍ김영민 지음ㆍ사회평론ㆍ308쪽ㆍ1만6,000원

미술과 건축, 종교와 영화를 넘나드는 책은 휙휙 넘어간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계하기보다, 여러 텍스트를 보여주며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도록 안내한다. 김 교수는 통화에서 “이런 인문학적 텍스트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석하고 허무함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진주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내 살결이 너무 하얗기 때문에, 내 목에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문장처럼, 허를 찌르는 유머 감각도 여전하다.

김 교수는 정치외교학부 교수다. 구제불능 같은 정치가 주는 허무함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정권이 바뀌어도 짜릿함은 한순간뿐이거늘. 김 교수는 통화에서 "너무 정치에만 몰두하면 정치적 결과에 삶이 크게 흔들린다. 보다 큰 삶의 일부로 바라보길 희망한다"고 했다.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많은 것들에 아이러니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크게 실망하거나 기뻐할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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