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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외교 관행

입력
2022.11.1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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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사고현장 앞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가 놓여 있다. 뉴시스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사고현장 앞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가 놓여 있다. 뉴시스

10월 29일 밤 11시 36분.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핼러윈 행사에서 발생한 다수 인명피해를 보고받고 긴급 지시를 내렸다”는 대통령실 공지가 나올 때만 해도 나는 엄청난 참사를 예상 못했다. 대통령 지시가 이례적으로 빨라서다. 당시 이태원 관련 뉴스는 마약과 불법 촬영 단속뿐. ‘호흡 곤란 신고가 수십 건 접수됐다’는 통신사 최초 속보가 뜬 건 2분이 흐른 오후 11시 38분이었다.

대통령실이 속보를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론사 입사 후 대형 참사를 수없이 겪었지만 언론 보도보다 대통령 긴급 지시가 먼저 공개된 건 처음이었다. 두 가지 추측이 가능했다.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이 인지했으니 현장 대응이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거나, 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됐거나.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건 158명이 멀쩡한 길바닥에서 세상을 등졌다는 충격적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때론 성가시게 시시때때로 울려대던 재난 문자는 그날 따라 조용했고 언론 출입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경찰, 행정안전부, 서울시청도 아무 공지가 없었다. 이태원에 10만 명 넘게 모인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왜 남의 나라 축제 때문에 이태원까지 갔느냐”는 식의 피해자를 향한 질타는 당국을 향한 물음표로 바뀌었다. 인파가 몰릴 걸 알면서도 왜 아무 대비가 없었나.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대한민국에선 일어날 수 없는 후진국형 참사였으니. 우리 눈으로도 믿기지 않는데 외국인은 오죽할까.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외국인은 26명(14개국). 한국전쟁을 빼면 대한민국 땅에서 하루 아침에 가장 많은 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당황스러운 건 “한국 정부가 관리했어야 했다”고 언급한 이란에 우리 정부가 발신한 메시지였다. 외교부는 “그런 언급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일로 이란 측에 각별한 주의 및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했다. 사견이 아닌 외교부 공식 PG(Press Guidance·언론대응)다. 기사에 인용하라고 만든 문구니까 세상 사람들이 알도록 보도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란은 이번 참사로 가장 많은 국민 5명을 잃었다.

외교부는 “사고가 났을 때 상대국 정부 책임을 언급하는 건 외교 관행에 맞지 않다”며 “우리 정부도 그래왔다”고 했다. 한마디로 외교적 결례라는 거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간단히 유감만 표명하면 될 일이다. 평소 점잖은 외교부답지 않은 “있어선 안 될 일”이라는 식의 고강도 PG는 중국이 ‘사드 3불 1한’ 억지 주장을 할 때도, 일본이 윤 대통령을 스토커 취급할 때도 없었다.

더구나 전 세계 시민이 한국 정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외국인 유족들은 현지 한국대사관에 “정말 막을 수 없는 참사였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있어선 안 될 언급”이라는 외교부의 경고는 이들 유족을 향한 것처럼 느껴진다. 안 그래도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부르는 정부의 책임 회피에 시선이 싸늘할 때였다.

그날 오후, 경찰이 참사 현장 112신고를 10여 건 묵살한 사실이 드러났고, 국무총리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농담으로 빈축을 샀다. 참사를 키운 정부가 피해당사국에 외려 성내는 이상한 외교 관행을 우리가 만든 건 아니었나.

정승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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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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