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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앙화 허상' 드러낸 FTX 파산... "중개소 헤게모니 분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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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앙화 허상' 드러낸 FTX 파산... "중개소 헤게모니 분해해야"

입력
2022.11.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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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FTX, 직접 발행한 코인 담보로 돈 빌려"
"감시·보호 없어, 대형 거래소가 시장 주도"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와 FTX 로고. AFP 연합뉴스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와 FTX 로고. AFP 연합뉴스

암호화폐(코인) 시장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가 한때 세계 코인 거래량 3위까지 올라갔던 거래소 FTX의 파산 사태를 '도박판'에 비유하면서 "하우스(도박장)가 판 벌이고 돈 관리도 하고 발행도 한 격"이라고 지적했다. '탈중앙화'라는 코인판의 목표와 달리 실제로는 소수의 대형 거래소가 시장을 주무르고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이 교수는 16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FTX의 최근 급성장세에 대해 "중개소(FTX) 스스로 코인을 발행하고, 스스로 상장하고, 그 코인이 거래되니 그걸 담보로 달러 같은 법정 통화를 빌렸는데 이게 증폭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FTX는 FTT(FTX 토큰)라는 자체 코인을 발행해 FTX 거래 고객들이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한편, 계열사인 코인 관련 펀드 운용사 알라메다리서치가 FTT를 일정하게 구매하도록 해 수요를 발생시켰다. FTT의 가치가 높아지고 거래량이 늘어나자 이를 담보로 대출을 하며 덩치를 불렸다. 이렇게 해서 생긴 돈은 각종 후원 및 홍보, 암호화폐 규제를 유리하게 하기 위한 정치권 로비, 부동산 등 실물자산 매입에 쓰인 것으로 나타난다.


암호화폐 거래소 FTX 회장직에서 물러난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14일부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남긴 괴문자. 암호화폐 시장에서 온갖 의혹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그는 뉴욕타임스의 문의에 "이유는 잘 모르겠다. 즉흥적으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트위터 캡처

암호화폐 거래소 FTX 회장직에서 물러난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14일부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남긴 괴문자. 암호화폐 시장에서 온갖 의혹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그는 뉴욕타임스의 문의에 "이유는 잘 모르겠다. 즉흥적으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트위터 캡처

이 교수는 "FTX에 대한 가장 큰 의혹은 FTX 내에 예치된 고객의 FTT를 건드렸다는 것"이라면서 "전통적인 금융이라면 예탁결제원이 있어서 돈의 보관은 (금융기관과) 따로 돼 있는데, 이 경우는 중개소에 돈까지 보관돼 있으니 그걸 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고객은 코인 거래소에 예치된 돈을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거래소에 있고 고객은 장부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행태와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FTX의 신뢰가 유지된 것은 어쨌든 거래량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사이자 세계 최대 코인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 이를 포착하고 보유하고 있던 FTT를 매도하자 의혹이 확신이 됐고, FTT와 함께 FTX도 추락했다.

"탈중앙화, 실상과 달라... 중개소 헤게모니를 분해해야"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가 2021년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가 2021년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교수는 FTX에 예치했거나 FTT에 투자한 개인이나 기관의 피해가 상당히 클 것으로 봤다. 특히 한국 투자자의 경우 "대부분 개인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액수는 적겠지만, 코인 자체가 반등할 리는 없고, FTX가 파산해서 금액을 변제하더라도 채무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뒤로 밀린다"고 우려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연쇄 도산 우려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개별 거래소가 발행한 코인의 가치를 보증할 수 있는 공적인 안전 장치가 존재하지 않고, 부적절한 거래를 감시할 방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남은 것은 신뢰뿐인데, 이 신뢰를 만드는 것은 주로 대형 거래소다. FTX의 '부실' 우려가 증폭한 것도 바이낸스의 움직임이 결정타가 됐다.

이 교수는 "사람들이 탈중앙화에 혹했는데 실상과는 많이 다르다"며 "중개소(거래소) 헤게모니를 분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FTX처럼 스스로 코인을 발행해 거래하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하는 중개소도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또 "FTT를 보유한 다른 많은 업체가 있고, 다른 업체가 발행한 코인도 FTX가 보유하고 있다"면서 "일종의 자금 돌려막기가 되는 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 거래소의 경우는 자체 발행 코인이 없는데, 지난해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의해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막은 게 다행"이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는 기본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주식에도 도박판 속성이 있지만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다. 반면 이건(코인) 기업이 불로소득을 얻는 거고, 사회적 이익이 하나도 없이 사행성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코인 시장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기관투자자들이 루나 사태를 겪으면서 포트폴리오에 코인을 안 집어넣는데, 이번 사건으로 확신을 하면서 유동성이 줄어들고 시장 자체가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실물 시장에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은 미미하고 일단은 이들만의 문제"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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