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항기 대신 기업가 전용기 이용한 룰라
각국 대표단, 전용기로 COP27 회의 참석
기후회의 개최지 선정 시 교통편 고려해야
최근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 중남미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이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리고 있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에 재벌 소유 개인 전용기를 타고 간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지키는 환경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그가 기후 파괴의 주범으로 꼽히는 전용기를 이용하는 건 이율배반이자 위선이라는 것이다.
“룰라가 돌아왔다”… 개인 전용기와 함께
1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룰라 당선인은 이날 COP27에서 브라질이 기후변화 대응을 주도하는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은 연설을 했다. 기후변화 취약국에 대한 금전적 보상 요구, 지구온난화 정책을 총괄하는 기후 부처 창설 구상, 아마존 산림 벌채 방지 계획 등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을 만나는 일정도 있다. 국제사회는 난개발로 아마존을 파괴한 ‘기후악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브라질 대통령을 꺾고 다시 돌아온 룰라 당선인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룰라 당선인은 대선 승리 후 첫 외교 무대에서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 이집트로 출국할 때 브라질 유명 건강관리 회사 설립자의 전용기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민항기를 타지 않은 것은 특권 의식을 들킨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자칫 정경 유착으로 보일 소지도 있다.
룰라 당선인 측은 전용기 소유주와 동행했으며 아직 대통령 신분이 아니라서 정부 소유 항공기를 탈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룰라 당선인이 극우 급진주의자들에게서 협박당하고 있어서 민항기를 타기는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지만, 여론은 우호적이진 않다. 브라질의 전직 장관은 “반드시 피했어야 할 부주의한 실수”라며 “대통령 취임 전이라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고 지적했다.
기후환경 회의 하는데 탄소 대량 방출 ‘아이러니’
개인 전용기는 '부자들의 무절제한 생활 방식이 초래하는 환경 파괴'의 상징으로 불린다. 매년 기후 관련 국제회의가 열릴 때마다 각국 정상과 대표단이 이용하는 전용기에서 배출된 온실가스 문제가 도마에 오르곤 한다. 영국 BBC방송은 항공기 추적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 자료를 분석해 “이달 4일부터 COP27 개막일인 6일까지 이집트 수도 카이로와 샤름 엘 셰이크에 착륙한 전용기는 각각 64대와 35대였다”고 보도했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도 이집트 정부가 특별 항공편을 편성했음에도 4일부터 현재까지 이집트 공항에 이착륙한 전용기가 400대가 넘는다고 전했다. 올해는 회의에 참석한 지도자들이 적어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는 각국에서 1만2,000명이 참석했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다른 대륙 나라들은 물론이고 철도로 연결된 유럽 국가 참석자들 다수가 항공편을 택했다. 항공기는 기차보다 50배 많은 오염물질을 내뿜는다. 당시 회의 기간 배출된 이산화탄소 양만 100만 톤이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2020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COP25 때보다 2배 이상 많은 양이었다.
개인 전용기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종은 미국 걸프스트림 G650이다. 룰라 당선인도 이 기종을 탔다. 걸프스트림 G650은 시간당 항공연료 1,893리터를 태운다. 리터당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2.5kg이다. 예컨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샤름 엘 셰이크까지 5시간 비행할 경우, 소모되는 연료는 총 9,465리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3.9톤에 달한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권고에 따라 이산화탄소 이외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고고도에서 가중되는 온난화 효과 등을 반영하기 위해 1.9를 곱하면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45.3톤이 된다. 걸프스트림 G650이 최다 탑승 인원 15명을 채운다면 1인당 온실가스 3톤을 배출하는 셈이다. 반면 탑승 인원이 훨씬 많은 민항기를 타면 1인당 배출량은 0.5톤으로 크게 줄어든다.
전문가들이 COP 개최지를 정할 때 교통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집트의 경우 중동 지역 정세 불안 등 지정학적 이슈가 있는 데다 유럽과 연결된 교통편이 부족해 항공기 이용이 불가피하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COP27에 참석하는 유럽인들에게 기차로 이탈리아로 간 뒤 비행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개최지를 다양화해 국제적 형평성을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교통 인프라로 접근 가능한 곳에서 회의를 하는 것이 환경에 이롭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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