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외국인근로자 450만 원 임금체불 고소
사건 송치 전 고소인 사망…노동청은 '기소중지'
서툰 한국어 억울함 호소…검사 적극 지휘·수사
암장될 뻔했으나 1년여 만에 유족에 피해 회복
"이제라도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달 25일 광주지검 순천지청(지청장 김윤섭) 이가은 검사실에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근로자 A(62·사망)씨의 유족이 방문했다. 유족은 이 검사가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고인의 한을 풀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A씨는 2018년쯤 딸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서 이국 땅을 밟게 됐다. 그는 예순을 넘긴 나이였지만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일터에 뛰어들었다.
A씨는 지난해 9월 전남 여수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20일 넘게 일했지만, 임금 450만 원을 받지 못했다. 450만 원은 그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을 찾아 진정고소를 넣었지만 6개월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에게 임금을 주던 작업반장 B씨의 소재를 파악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떼인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올해 3월 본국으로 돌아가 숨을 거뒀다.
이가은 검사는 올해 4월 고용부의 송치로 임금체불 사건을 알게 됐다. A씨가 사망한 지 이틀 뒤였다. 당시 고용부는 '피의자 소재불명'을 이유로, 기소중지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고소인 A씨도 이미 고인이 된 상황. 이 검사는 사건 기록을 검토하며 A씨가 서툰 한국어로 남겼을 호소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검사는 결국 수사를 더 해보기로 했다. 고용부 여수지청에 보완수사를 지휘했다. 고용부는 지속적으로 B씨의 주거지를 방문하고, 연락처 등을 수소문한 끝에 한 달여 만에 B씨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고용부는 그러나 5개월 후 '혐의 없음' 의견을 올렸다. B씨는 현장관리자였을 뿐, 임금 지급에 책임이 있는 사용자가 아니었다. 또한 근로자 명단인 출역일보에 A씨와 비슷한 이름이 기재돼 있지만 'A씨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덧붙였다.
이 검사는 지난달부터 B씨와 건설업체 과장 등을 직접 조사하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소환하기 어려운 건설업체 담당 직원에겐 영상통화로 A씨 사진을 보여주며 근로 사실을 확인했다. 그 결과 출역일보에 적힌 이름은 A씨로 밝혀졌다. 베트남어를 한글로 옮겨 적으면서 빚어진 혼선이었다.
A씨가 제기한 고소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다. B씨는 임금 지급 주체가 아니었기에 재판에 넘길 수 없었다. 처분은 끝났지만 이 검사는 지난달 A씨 유족을 면담해 경과를 설명하고, 건설업체 측엔 과실에 따른 체불임금을 지급하도록 적극 조정에 나섰다. 임금을 받게 해 달라며 고용부 문을 두드린 지 1년. A씨는 사망했지만, 그의 억울함은 체불임금 일부를 받으면서 조금이나마 풀리게 됐다.
이 검사는 "자신의 힘으로 피해 회복이 어려웠던 A씨의 안타까운 상황을 알게 되자,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고 분쟁을 해결할 필요도 있었다"며 "검사는 혐의 유무 판단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공익의 대표자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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