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물관리위원회, 10일 기자간담회로 현안 해명
"등급분류는 규정대로" 설명에도 게이머들 반발 거세
"소통이 아니라 불통의 이미지만 강화"
"간담회가 망했습니다."
지난 10일 게임물관리위원회 간담회 소식이 알려지자 게이머 공동체의 분위기는 분노를 넘어서 침울함으로 치닫고 있다. 게임위 자체가 한국 내에 유통되는 게임물 대부분의 운명을 결정하는 조직으로 비판을 수용하고 개선안을 마련하는 대신 핵심을 피하고 게이머와의 형식적 소통만을 강조했다는 판단에서다.
게임위는 10일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블루아카이브'와 '바다신2' 게임물 등급분류를 중심으로 불거진 각종 논란을 해명하고 향후 대책을 발표했다. 간담회에는 김규철 위원장과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해 ①게임이용자 상시소통 채널 구축 ②등급분류 과정의 투명성 강화 ③직권등급 재분류 모니터링 및 위원회 전문성 강화 ④민원 서비스 개선 등을 약속했다.
'블루아카이브' '바다신2' 등급은 "규정대로"
이날 게임위 간담회는 애초에 게이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일차적으로 게임위가 게이머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된 계기인 등급분류 개별 사건에서 게임위가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위는 규정에서 정해진 대로 사안을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게이머들은 규정 적용이 자의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게임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넥슨의 '블루아카이브'는 제작사가 국제등급분류연합(IARC)에서 등급 분류를 위해 제시하는 제작사 자체 설문에 '외설적·성적 주제 표현 없음'으로 응답해 구글 등 자율심의 지정 업체로부터 12세 또는 15세 이상 이용가를 받았다. 그러나 게임위는 이 게임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고 재심의 절차를 밟은 결과 여성 캐릭터의 신체 부위 노출과 성행위를 암시하는 음성 등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게임위 발표대로라면 결국 넥슨이 블루아카이브를 출시하면서 최초 IARC에 입각한 자율심의에서 제시하는 자체 설문에 부정확하게 답한 게 문제라는 얘기다.
게임위 측은 넥슨이 조치에 별도의 이의신청도 하지 않은 상태이며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의견수렴 절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넥슨은 블루아카이브 현행 게임의 경우 등급 수정을 받아들이고 문제 부분을 수정한 '틴(10대) 버전'을 별도로 출시한다는 방침을 낸 상태다.
게임위는 아울러 논란이 된 '바다신2'의 전체이용가 분류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래픽에는 유사성이 있지만, 게임이용자의 능력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릴이 돌아가는 슬롯머신 모사 게임물인 '바다이야기'와 달리, 주어진 미션에 따라 그림 여러 개가 슬롯처럼 움직이는 동안 그 게임을 순발력을 발휘해 맞추는 게임이라는 설명이다.
게임위는 게임법과 관련 규정대로 시간당 투입 금액을 제한하고 운영정보표시장치(OIDD)를 설치한 점 등도 등급분류 판정의 이유라고 밝혔다. 하지만 '바다신2'를 관찰한 업계에선 "현실적으로 그림이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 목표한 그림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며 사실상 규정을 우회하고 '어뷰징'한 사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인적 구성, 심사 합리화엔 "노력하겠다"
게임위는 이번 간담회에서 게이머들과의 소통을 늘릴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게이머들의 주요한 요구 사항인 규정 합리화와 적절한 사후조치, 인적 구성 개선 등에 대한 답변은 애매한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임위는 등급분류 규정이나 게임위원 구성을 결정할 권한이 없어, 결국 실질적으로 '게임위 개혁'의 선까지 나아가는 것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의지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게임위의 등급분류가 자의적이라는 게이머들의 지적에 대해 김규철 위원장은 "선정성, 사행성, 폭력성 여부를 놓고 대다수 게이머가 생각하는 기준과 사회 다른 분야에서 바라보는 기준의 격차가 존재하고,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선정성, 폭력성 기준에 대한 변화를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반영하겠다"고 했다. 심의에 구체적인 기준을 명시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심의가 아닌 게 될 것"이라면서 "수년간 쌓인 사례를 이미지로 보여드리고 왜 이런 등급분류를 받았는지 설명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심의 회의록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성 문제'가 제기된 게임위원의 인적 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내년 임기가 만료되는 위원 5명의 후임으로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올 수 있도록 주무부처에 의견을 내겠다"고 했다.
지난 7일 게임위에 대해 비판적 성명을 낸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다빈치가상대학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회의록을 공개하겠다고 하면, 그동안 회의록은 왜 공개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김 위원장이 국정감사장에서 게임 전공자가 몇 분 안 되지만 문제가 없다는 발언을 했는데 그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며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말 속에 양념처럼 집어넣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확률형 아이템, P2E 등 현안엔 "입법 사안"
게임위는 게이머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이나 사행성 문제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고 있는 P2E(게임으로 돈 벌기) 게임 허용 문제에 대해서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게임위가 의견을 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취지로 답했다. 확률형 아이템과 P2E 관련 논의는 "게임위가 사행성은 방조하고 선정성만 지나치게 과잉 검열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문제의 책임을 사실상 입법부로 돌린 셈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에서 2021년부터 게임사와 게이머 사이에서 불거진 한국 게임계의 중심 의제였다. 게이머들은 게임사가 제시하는 확률을 신뢰할 수 없고, 지나친 지출을 유도한다는 이유로 주로 한국에서 출시된 확률형 게임을 '도박과 같은 것'으로 여겨 비판해 왔다. 반면 업계에선 확률형 아이템 상품은 게임 내부의 아이템과 재화만을 다루기 때문에 사행성과 연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사한 시스템은 해외에서도 '랜덤박스'라는 명칭으로 규제 여부가 논쟁 대상이 되고 있으며, 한국 국회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시 의무화'를 규정한 법안이 지난해 말부터 입법 논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아울러 게임위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게이머들의 국민감사 청원 절차에 따라 감사에 들어간 비리 의혹에 대해서 "법률과 절차에 따라 성실히 감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게임위 사무소에 설치된 '출입금지 팻말'에 대해서는 "아케이드 게임물 관계자들이 사무소에 와 직원을 겁박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설치했다"면서 "이슈가 해소됐기에 출입금지 문구를 떼어냈다"고 해명했다.
소통을 원했지만, 불통이 더 심해졌다
이번 게임위 간담회는 게이머들의 게임위에 대한 적대감이 전례 없이 격화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게임위 간담회가 종료된 날부터 김규철 게임위원장의 여러 발언을 인용하며 게임위를 비판하는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떠돌았다.
가장 큰 격분을 산 내용은 김 위원장이 "스팀은 포르노다, 역겹다"라고 발언했다는 주장이다. 스팀은 미국 밸브사가 운영하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스팀은 골칫거리'라는 국정감사 발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스팀에 포르노 수준의 게임이 있고, 개인적으로 역겨움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게임위 측은 사후 "스팀의 모든 게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부적절한 게임이 유통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실제 스팀에는 노골적 성관계를 묘사하는 게임이 지속적으로 신규 출시되고 있고 연령 인증 절차도 부실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스팀 자체를 제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미 수많은 국내 게임사와 게이머가 스팀을 통해 게임을 출시하고 이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위는 개별 게임별로 지역제한 조치를 요청하고 있고, 스팀도 이에 협조하고 있다. '스팀은 골칫거리'라는 발언 등은 이런 맥락으로 나온 것이지만, 온라인에선 "게임위원장이 스팀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다"는 식으로 퍼져나간 지 오래다.
게임위는 '게이머와의 대화' 개최를 약속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대신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게임위는 게이머 사이에 널리 퍼진 적대감을 해결하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통'하겠다며 개최한 간담회가 게임위의 '불통 조직'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게이머의 불신만 깊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게임사들이 지난해부터 이어져 오는 '트럭 시위'와 같은 집단행동에 참여한 게이머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는 자리를 연 것처럼, 게임위도 비슷한 방식을 택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기자를 불러모아 진행하는 간담회는 '소통'이 아니라 설명회다. 게임위가 '소통'을 목적으로 했다면 기자간담회를 할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실제로 불러들여 대화하는 것이 맞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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